“우리 주변에선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양 떼처럼 고분고분하고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노라고….”
프랑스의 소설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가 1873년에 발표한 단편 『별』의 유명한 문장입니다. 별이 가득한 맑은 가을밤이면 떠오르는 여러 장면 중 하나죠. 소설 속 목동이 바라보는 프랑스의 ‘별 헤는 밤’이 우리네 ‘별 헤는 밤’과 얼마나 달랐을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곳에서 빛났던 별이 혹시 지금 내 위에 빛나는 저 별은 아니었을지 상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천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 모든 별들이 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요.
별도 태어나고 죽습니다. 각자의 질량에 따라 아름답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별은 수천억 개의 태양 빛을 내뿜으면서 폭발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별이 남긴 먼지와 원소들은 다시 새로운 별의 씨앗이 되고요. 소설 속 목동이 바라보던 별이나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이나 모두, 빛나면서 태어나 빛나면서 죽는,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인 것이죠.
하느님께서 밤하늘의 별보다도 더 아끼시는 사람도 빛을 발하며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 어느 별보다도 밝은 아가의 미소는 세상을 태양보다 환하게 비춥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어느 별보다도 장렬하게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소중한 추억만을 남긴 채, 사람은 태양보다 뜨겁게 세상과 작별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 작별의 순간을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고자 하는 어떠한 움직임들이 있어 우려가 큽니다.
최근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환자의 고통과 가족의 아픔을 극적으로 부각하며,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가 그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마땅히 필요한 것인 양 꾸미는 영상이나 글을 심심치 않게 만납니다. 안락사란 불치병에 걸려 더 이상 치유될 가망성이 없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진이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그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력 존엄사는 영어로 ‘assisted suicide’라 하는데, 말 그대로 ‘도움받은 자살’이죠.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의 차이는 바로 누가 생명을 종료하는 데 관여하는가에 있습니다. 의료진이 관여하면 안락사이고, 스스로 약물을 주입하면 조력 존엄사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전자는 살인이고, 후자는 자살입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최후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별의 마지막은 자연스럽기에 빛납니다. 별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도 그렇습니다. 위령 성월입니다. 삶도 죽음도 오직 ‘하느님만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