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호(1848~1866)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조화서 성인입니다. 조윤호의 가족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사는 전주 성지동 교우촌으로 이사 갔습니다. 그곳 회장이었던 손선지 성인은 조윤호를 ‘보기 드물게 착실하고 품행이 바르며 교우 본분을 충실히 지키는 열심한 교우’라고 칭찬했습니다.
1866년 12월 5일,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잡으려고 성지동을 급습했습니다. 조윤호는 아버지 조화서 성인과 정원지 성인, 이명서 성인 등과 체포되었습니다. 포졸이 말했습니다. “네게 천주교를 가르쳐 준 사람을 대라.” 포졸들이 매를 때리자 조윤호가 대답했습니다. “높으신 스승은 프랑스에 계시고, 나에게 천주교를 가르쳐주신 분은 1839년에 순교하신 우리 할아버지 조 안드레아요.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어서 잡아가시오!” 포졸이 다시 말했습니다. “너는 젊으니 배교한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 이에 조윤호는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재판장으로 데려가시오!” 포졸들은 체포한 사람들을 전주 감영으로 이송했습니다. 그곳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열일곱 번의 지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체포된 교우 중에 조윤호만 제외하고 모두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자 조윤호가 감사에게 말했습니다. “왜 나는 데려가지 않소?” 그러자 감사는 “국법에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죽이지 못하게 되어있을 뿐 너도 곧 죽을 것이다.” 감사는 젊은 조윤호가 죽는 것이 안타까워 사람을 시켜 배교 하게끔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조윤호는 절대로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순교했습니다. 조윤호는 아버지가 순교하기 전에 말했습니다. “아버님, 이제 천국으로 가십니다. 그곳에서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너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곧 나를 따르도록 하여라.”라고 했습니다. 조윤호가 처형되는 날이었습니다. 감사가 말했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느냐?” 이에 조윤호는 똑바른 목소리로 “천국에 가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윤호는 사형선고문에 서명했습니다. 포졸이 죽기 전에 먹으라고 술과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조윤호는 성호를 긋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음식을 먹었습니다.
마지막 형벌이 시작되었습니다. 포졸들은 조윤호의 옷을 벗기고 땅에 눕혀 놓고 두 손을 합장하게 했습니다. 포졸 네 명이 둘씩 갈라져 조윤호를 매로 쳤습니다. 조윤호는 매를 수없이 맞아 실신했습니다. 그러자 거지들을 불러 조윤호 목에 맨 밧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기라고 했습니다. 열아홉의 젊은이 조윤호 요셉은 ‘그렇게’ 순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