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정해박해 이후 가톨릭 신자들은 박해를 피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선대부터 살아온 고향땅을 떠나 연고도 없는 낯선 땅으로 이주하여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가족 또한 고향을 떠나 마지막으로 정주한 곳이 바로 이곳 ‘골배마실’입니다.
6세에 부모님을 따라 이곳으로 온 김대건 신부님은 세례를 받고 신학생이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나기 전인 15세까지 골배마실에서 살았습니다. 모방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은이마을까지는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골배마실은 첩첩산중이기도하고 뱀이 많은 지역이라 ‘배마실’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선대부터 가톨릭 집안이었던 신부님의 가족이 박해를 피해 지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아버지인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이 체포되어 순교하시고,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사제가 되어 오신 김대건 신부님을 다시 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신자들은 힘들때마다 이곳을 방문하여 하느님과 김대건 신부님께 기도하여 온 거룩한 성지이기도 합니다.
골배마실은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최초로 사제 성소가 이루어진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김대건 신부님에게 임하신 성령의 부르심.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처음 그 부르심을 들었을 때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 믿고 가슴이 뜨거웠다고 전합니다. 그 뜨거움이 녹아있어야 할 골배마실 성지는 현재 초라한 모습입니다. 누군가 일러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로 끝에는, 철재로 된 문위에 성지임을 알리는 표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골배마실 성지는 은이 성지에서 관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성지입니다. 더구나 사유지 속에 마치 고립된 섬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도처나 경당 하나 없이 신부님의 동상과 야외 제대만이 쓸쓸하게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2027 WYD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1년여 앞두고 있습니다. 이 불모의 땅에서 청년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사제로 부름받았습니다. 그 ‘성소’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 골배마실 성지를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