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성지에 부임해서 김가항 성당에 안치된 김대건 신부님의 머리카락을 보고, 약간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청년 김대건 신부님의 머리카락 색깔이 도무지 청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회백색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자료를 찾아보았고, 김대건 신부님의 스승 신부님이 쓴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불쌍한 김대건 안드레아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늘 위통, 두통, 요통을 앓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리털만 보더라도 그의 심한 두통을 짐작하게 합니다. 지금 그의 머리털은 회색, 흰색, 누런색, 거의 온갖 색깔입니다. 저는 지금껏 이렇게 지저분한 머리털을 본 적이 없습니다.”
(리브와 신부가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1839년 8월 11일)
최양업 신부님은 건강하셨겠지 하고 찾아보다가 또 다른 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일 처음 온 소년은 최양업 토마스라고 하고, 다음은 과추리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이들을 우리가 보낼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렸을 때 귓병을 앓아 왼쪽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입니다.”
(모방 신부가 파리신학교 신부들에게, 1836년 4월 4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801년 주문모 신부님 순교 후 조선교회는 33년간이나 목자인 사제가 단 한 명도 없는 암흑기를 보내게 됩니다. 신앙을 지키려는 교우들은 깊고 깊은 산골짝으로 숨어들게 되고 김대건 신부님도 1827년 어린 나이에 이 깊은 골배마실 골짜기에 피난 정주하게 됩니다.
일반 백성들도 쉽게 굶주리던 시대, 그런 삶도 못살고 신앙 때문에 남들 눈에 안 띄는 깊고 깊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교우들의 삶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땐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머리카락은 회백색이고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던 것도, 추정컨대 홍역을 심하게 앓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그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평생 안 들리게 된 것도, 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 천주교 교우로서 신앙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심적으로도, 그리고 육신적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신부님은,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시작부터의 고통의 환경, 신학생 시절 타국의 낯설고 어려운 환경, 그리고 이처럼 힘든 육신의 고통까지 갖고 계셨음에도 하느님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으시고, 불굴의 신앙으로, 하느님과 불쌍한 조국의 교우들을 위하여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느님이 약속하신 하늘 나라에서, 어리석고 불쌍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