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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 성지 ① 첫 사제 김대건, 은이 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시다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2-05 10:08:44 조회수 : 45

주문모 신부님이 순교한 1801년부터 1834년까지 조선에는 사제가 없었습니다. 사제도 없이 33년간이나 신앙을 지키고 살았다는 것은 교회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가 힘듭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이나 교리 서적들을 필사하여 나눠보며 신앙을 지키고 살았다고 합니다. 순례자는 이러한 초기 선조들의 신앙을 보면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하느님의 은혜인지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조선에 신부가 없었던 시기를 지나 마침내 1836년 1월, 프랑스 사제인 모방 신부님이 서울에 오셨다는 소식을 은이 공소 사람들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공소회장이었던 김재준(김대건 신부 부친)은 가슴 뛰는 이 소식을 듣고 서울에 있는 정하상 바오로의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은이 마을 일대 공동체의 신앙생활에 대해 알리고 모방 신부님을 초대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청년 김대건도 모방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됩니다. 당시 김대건의 나이는 15세였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곳이 바로 지금의 ‘은이 성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모방 신부님은 이곳에서 3일 동안 머무시면서 은이 공소 일대의 많은 신자에게 세례성사를 베푸셨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모방 신부님이 이곳으로 올 때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푸는 것 이외에 중요한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 이곳에서 세 번째 신학생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기도 중에 많은 청년 사이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청년 김대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 청년이다.’ 하셨고 청년 김대건 또한 성령의 부르심에 가슴이 뜨거웠다고 전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본명은 재복입니다. 대건(大建)이라는 이름은 성인이 되어 새로짓는 관명으로, 신부님이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들어온 이후 자신의 웅장하고 큰 포부를 담아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은 순교한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의 세례명으로, 순교하신 작은 할아버지의 신앙을 존경하여 그 신앙을 닮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은이 성지 기념관은 청년 김대건에게 임하신 성령의 부르심을 묵상하고, 그 옛날 초기 한국 가톨릭 신앙 선조의 생활과 신앙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을 돌아보며 성소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느님의 사람, 청년 김대건 신부님을 다시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