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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 불행할 것이 뻔한 아이도 낳아야 하나요?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06-07 10:18:12 조회수 : 136

제가 부제품을 받던 날, 저는 어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제 서품 축하 저녁식사 후 잠깐 어머니와 둘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꺼내시더군요. “이제 와서야 하는 얘기지만 우리 막내아들 부제님은 태어나지 못할 뻔했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8남매의 맏아들이었던 제 아버지는 어머니께서 저를 임신하셨을 당시에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곱 동생의 뒷바라지까지 하셔야 했습니다. 그러자면 입 하나라도 줄여야 했는데, 셋째 아이가 들어선 것이었죠. 고심 끝에 부모님은 낙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셨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서 결국 그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고, 건강히 잘 커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낙태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리로 인정하면서 큰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41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판결을 내림으로써 낙태죄는 66년 만에 효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련법 제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 사회는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관련법은 없는 공백 상태에 있습니다.

낙태는 한마디로 태아가 모체에서 분리되어 죽거나 소멸되는 것을 뜻합니다. 의학적으로는 아직 혼자서 생존할 능력이 없는 태아를 모체의 자궁 밖으로 축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직접 살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낙태는 모체의 치명적인 병의 치료를 위한 치료적 낙태우발적 낙태로 구분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모자보건법 14조가 규정하는 치료적 낙태만 허용했는데, 2021년부터는 우발적 낙태까지 범위가 확대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낙태를 선택하거나 그 선택을 지지할까요?

 

낙태를 찬성하는 이들의 근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중심에 있습니다. 즉 태아는 여성의 신체에 속하고, 임신의 지속과 종결은 여성의 사생활에 속하는 것이므로 여성이 상황에 맞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선택이란 동등한 가치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나 고민과 갈등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질적으로 극명한 차이가 있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백화점이나 시장에서 신발 두 켤레를 놓고 무엇을 살지 고민할 수는 있겠지만, ‘삶의 질과 삶의 질의 전제가 되는 생명 자체를 놓고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세상의 논리로 보면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 전 나자렛의 나이 어린 처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출산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가능했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듯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종국에 가서는 행복으로 이어질 것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 믿음 덕분에 저도 다행히 살아남아서 지금 신학생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