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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4-11 조회수 : 110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선배 신부님께서 “뭐 하냐?”라며 말하며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조금 있다가 올까?” 하며 다시 나가시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부님께서 문을 열 당시에 저는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도 울어서 눈이 뻘겋게 변했고, 콧물까지 질질 흘리고 있을 때 들어오신 것입니다. 


사실 집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 내용이 너무 슬픈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그래서 눈물 콧물 쏟고 있을 때 선배 신부님께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충분히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휴지로 닦고 책 읽다가 슬퍼서 그랬다고 하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인데?”


이 세상 삶 안에서 오해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오해가 너무나 많은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대화를 통해 잘 풀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오해가 굳어져 아예 담을 쌓고 지내는 경우도 많아 보입니다.


하긴 예수님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 신원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만 유다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화라는 것도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대하는 유다인들은 돌을 던지려고 집어 들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들 나름의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요한 10,33)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느님의 일만 보더라도 오해를 충분히 풀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을 믿어라.”(요한 10,38)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만 합니다. 오해를 풀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완고한 마음으로 오해를 더 키우고만 있습니다.


오해도 받아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이 하였듯이, 힘을 이용해 상대방을 눌러 버리려는 마음으로는 절대로 오해를 없앨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범으로 보여주셨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함께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춰야 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예수님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의 소유물이다(헤로도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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