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말씀]
■ 제1독서(이사 50,4-7)
바빌론 유배시기 동안 제2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려온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메시아를 소개합니다. 예언자는 화려한 궁궐에 사는 권세의 임금과는 거리가 먼 종의 모습을 띠고 있는 메시아, “매질하는 자들에게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뺨을 턱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세상의 온갖 악의 대가를 대신 짊어지기를 수락하는 희생양으로서의 메시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가?
■ 제2독서(필리 2,6-11)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노래했던 초대 공동체의 찬미가 하나를 제2 독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초대교회가 일찍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하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으로서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의 모든 삶은 따라서 사랑의 선물로 인식되며, 그분의 부활은 이 사랑의 승리를 드러낸 사건으로 길이 머뭅니다.
■ 복음(루카 22,14-23,56)
복음저자 루카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매우 상세한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리스도는 밀려오는 증오심 앞에서도 끝까지 자비의 마음을 잃지 않으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최후의 만찬 이야기는, 이미 종의 신분으로 제자들을 위해 온전히 봉사하시는 스승 그리스도와,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던 눈먼 제자들 사이의 대조를 그려줍니다. 이 대조는 또한 적대자들을 거슬러 싸우는 제자들과 대사제 종의 귀를 치유해 주시는 스승의 행위 사이에서도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을 저버린 백성의 불행을 걱정하시며, 십자가 위에서는 회개하는 강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로마군대의 이방인 백인대장이 외친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하는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사명을 가장 정확하고 간략하게 정리한 고백으로 길이 남습니다.
[새김]
오늘부터 사순절의 정점인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의 한 주간을 가리키며, 우리 가톨릭교회의 전례 주년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경건한 때입니다. 이 기간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룩하신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특별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 예수님이 많은 백성으로부터 찬미 받고 왕으로 환대받는 승리의 날이며, 바로 그 백성으로부터 배척받아 십자가에 못 박힘을 기억하는 죽음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구세주로 맞이하는 군중의 무리가 신앙의 나라면, 순간순간 예수님을 배척하고, 본능 또는 불의와 타협하여 미지근한 생활을 하는 무리는 배신의 나가 됩니다. 신앙의 나와 배신의 나는 이렇게 동시에 교차점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찬미하는 승리의 노래는 예수를 죽이라고 외치는 원성과 저주로 변해버립니다. 손에 손에 쥔 그 찬미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가 땅에 떨어지고, 그 대신 그 손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못과 망치가 쥐어집니다.
수난복음을 읽을 때마다 늘 착잡한 심정이 앞섭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속담대로, 바로 우리 자신이 그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유리한 존재로 다가오면 올리브 가지를 흔들어 그분을 환영하고, 내 뜻이나 욕구와 어울리지 않으면 그분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저주까지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군중처럼 우리도 지금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거짓 증거를 내세우면서 서로를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는지? 내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남에게 내 십자가를 떠맡기지는 않는지? 내가 좀 안다는 것으로 형제의 무지를 고발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 건강으로 오히려 형제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지는 않는지? 나의 편의, 나의 이득을 위하여 형제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할 순간, 성주간, 첫날입니다.
예수님은 이천 년 전에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후 부활하여 천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가운데에서 고통당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서, 하느님께 올려지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시기와 질투, 교만과 음모를 없애고 참된 사랑만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가면을 벗기고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린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 그것이 고통이든 슬픔이든 아픔이든 십자가이든, 주어진 모든 것 받아들이면서, 주님을 따라나서는 삶 다짐하며 부활축제를 준비하는 성주간으로 들어서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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