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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6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4-15 조회수 : 133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11년전 성주간 수요일이 4월 16일이었었는데, 올해도 성주간 수요일이 4월 16일입니다.  성목요일 아침 성유축성미사 때 주교좌 성당에 모여 전날의 참혹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먹먹한 마음을 나누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주년입니다.  모든 희생자의 영원한 안식 위하여 기도하고, 유족들에게 주성모님의 따뜻한 위로가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요한복음을 통해 유다의 배반 사건을 목격했다면, 오늘은 마태오복음을 통해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유다의 배반이 어느 정도 계획된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수석 사제들과의 흥정(?)을 통해 밝혀집니다. 몸값으로 합의한 은돈 서른 닢, 율법에 따르면(탈출 21,32), 우리집 소가 이웃집 종을 받아 죽게 했을 경우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웃집 가축에게 희생이 돼도 은돈 서른 닢이면 아무런 사회적 문제도 일으키지 못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현실을 말해줍니다. 그저 한낱 희생양이 될 것임이 예고되는 순간입니다.

 

성경, 특히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읽기에 고통스러운 구절들이,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으며, 어제와 오늘 복음 말씀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유다가 한 일을 다시 더듬어보아도 불편함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유다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천박하고 야비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빨리 분노할 일은 아닙니다. 너무 빨리 분노해버리면 우리에게 남는 메시지가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다의 처신이 야비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 안에 어떠한 것까지 담길 수 있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처럼 악과 죄가 스며들지 말라는 법이 없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살피면서 유다의 행동을 다시 읽어보아야 합니다.

 

유다의 배반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배반 사건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펼쳐졌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유다가 평소에 배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면,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거슬러 행동했다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다면, 오히려 그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러한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행동 또한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누가 당신을 배반할지, 그가 어떤 음모를 꾸밀지 이미 알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우리는 유다에게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을 것이고, 만찬 장소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출입문 가까이에 자리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처신하십니다. 당신을 배반할 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십니다. 당신과 빵을 나눌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유다 스스로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리기 위하여 출입문 가까이에 자리합니다.

유다는 결국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주님의 강력한 사랑의 눈빛을 스스로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회개하여 주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어둠의 자식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회개 여부가 유다의 운명을 좌우한 셈입니다.

 

다른 동료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는 여쭙는데, 유다만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습니다. 죄인을 포함한 모든 이를 사랑으로 보듬으시는 주님 자리에, 율법을 가르치고 준수를 종용하는 스승님이 앉아 있습니다. 주님을 배반하는 아무리 큰 죄악이라도 참회하면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주님 자리에, 율법에 따르면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엄격한 랍비가 서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 잘했건 잘못했건 늘 주님께 돌아가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무엇 하나 주님께 내드릴 것 없는 부족함 많은 인생이라 하더라도, 주님께 돌아가겠다는 의지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며, 내일부터 시작되는 성삼일에 들어서기를 기도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족들,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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