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삶
[말씀]
■ 제1독서(사도 5,27ㄴ-32.40ㄴ-41)
사도들의 첫 선교활동을 전하면서 사도행전의 저자 루카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과 이후 제자들의 상반된 모습을 강조합니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헛된 환상에 빠져 헤맨 나머지 스승의 십자가상 죽음 앞에서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이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고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합니다. 내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되찾아 주님과 교회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복음전파 사명의 길로 나섭니다.
■ 제2독서(묵시 5,11-14)
묵시록 저자는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부활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니고 있던 확신을 찬미가의 형태로 표현합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정녕 승리하셨으며, 사탄의 세계에 의한 폭력으로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영광의 싹이 부활하신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났음을 찬미하며 노래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를 영원 무궁히 받으실 분”입니다.
■ 복음(요한 21,1-19)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을 만나시는 장면 하나를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나, 현실적으로는 여러 내용이 집약된 장면입니다. 경이로운 고기잡이(잡힌 물고기의 상징적 숫자는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를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승을 알아보고서 두려움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베드로, 호숫가에서 함께 한 식사, 베드로에게 맡겨진 새로운 사명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주님께 대한 사랑 고백으로 지상 교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사명을 위임받으며, 이를 위해 죽음도 불사해야 할 것입니다.
[새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외적으로는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유다인들 멸시의 눈초리와 결별의 압박은 조금도 가실 줄을 몰랐으며, 로마인들 또한 정치적 폭동 방지에만 급급했을 뿐 그리스도교에 대한 무관심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니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몰이해와 두려움으로 일관했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떨치고 공적인 자리에서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이러한 모습은 또 다른 고통을 불러들일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이제 그들에게 고통은 부활의 영광을 향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큰 변화는 십자가로 대표되는 고통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서, 그것을 기초로 부활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였다.”
그러기에 주님께 대한 베드로의 사랑 고백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각오할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백이 됩니다. 고통을 마다하거나 거부하는 삶으로는 부활 체험은 어림도 없는 일이며, 반복되는 부활 체험 없이 마지막 순간의 부활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사순시기 열심히 묵상해온 고통, 부활의 삶을 가능하게 하며 보장해주는 십자가, 부활 시기 동안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슬기를 키워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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