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나바 사도
사도하면 당연히 열두 사도를 떠올리지만, 성 바르나바는 그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음에도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사도로 인정을 받았으며, 성 바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두 사도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교회의 시기에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특별히 이민족의 선교를 위해 뽑힌 사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독서 말씀 참조). 사도행전과 갈라티아서, 콜로새서 등에 바르나바가 거의 40번 정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인물의 중요성과 역할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소개되는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자신이 가진 것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봉헌하자, 사도들은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란 뜻으로 바르나바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사도 4,36-37).
그는 그리스도교 박해자에서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울, 곧 성 바오로를 다른 사도들을 포함한 예루살렘 공동체가 받아들이도록 인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사도 9,26-28). 또한 첫 순교자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보살피다가, 회심 이후 고향 타르수스에 머물러 있던 바오로를 찾아 이민족 선교를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사도 11,19-26).
바르나바는 바오로의 선교여행에, 특히 첫 번째 여행에 함께 합니다.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으나, 이를 시기한 유다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사람들로부터 신으로까지 취급되기도 했으나, 유다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해 돌 세례를 받고 도시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한 성 바르나바는 성 바오로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며(사도 13-14장), 이민족 선교를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개최되었을 때도 바오로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사도 15장).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르나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활발히 선교하다가, 61년경 (키프로스 섬의 동쪽 해안에 있는 고대도시) 살라미스에서 투석형으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로마 순교록은 6월 11일자 순교자 목록에 사도 바르나바를 언급하고 있어, 오늘을 성 바르나바의 순교일로 기념하고 있으며, 특히 키프로스 교회에서는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함께 이민족 설교를 위해 헌신했던 성 바르나바 사도 축일을 맞이하여, 사도와 같은 굳은 믿음과 열정으로 이웃들에게 주님을 알려 그들과 함께 신앙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하루,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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