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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2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6-12 조회수 : 170

의로운 형제 관계

 

 

오늘 예수님은 의로움을 주제로 말씀을 여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이어지는 가르침들은 주제를 달리하며 산상설교의(마태 5-7)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집니다.

이 가르침의 묶음에 관한 군중의 반응 자체가 이 가르침이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이 새로운 가르침들은, 먼저 모세와 후대의 사람들 곧 유다인들의 조상들을 가리키는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 다시 말해서 옛 계약[구약]의 핵심 율법인 십계명이 명시하는 법규를 언급하고 난 다음, 새 가르침을 제시하는 구조를 따릅니다.

우선 형제애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십계명이 명하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 하는 계명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새 가르침은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 바보!’라고 하는 자, 멍청이!’라고 하는 자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임을 경고합니다.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가 재판에 넘겨진다는 사실도 그러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사소한 욕으로 취급되었던 바보 또는 멍청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최고 의회에, 나아가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수 있다는 것이 다소 지나친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노든, 분노를 입으로 표출하는 욕이든, 그것이 결국 형제에 대한 공격의 기초가 되며, 공동체 관계를 해치거나 파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땅히 경계하고 근절해야 할 요소로 다가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은 십계명이 명시하고 있는 행위 근절은 물론, 그 근본 뿌리까지 척결할 때 비로소 다가설 수 있는 도리라는 가르침 앞에 섭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나아가, 형제애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뛰어넘어 하느님과의 관계를 좌우하는 요소로 등장합니다: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올리는 예물이 참된 예물, 의로운 예물이 되기 위해서는 형제와의 화해가 먼저라는 명백한 가르침입니다.

의로우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의로운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의로운 마음은 형제와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이의 원한이 살인의 근원이 될 수 있으므로, 화해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종교적 경의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임이 선포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율법을 폐지하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하는 십계명의 규범을 따르기 위해서는,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가슴에 새깁니다. 형제와의 의로운 관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가르침 앞에 서며, 그것이 구원을 향한 관계임을 터득합니다.

오늘 하루, 가까운 사람들은 물론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언행을 보이는 가운데, 형제와의 관계가 곧 하느님과의 관계, 구원을 위한 관계임을 선포하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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