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는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음악에서 뛰어난 재능까지도 보였습니다. 깊은 기도와 묵상으로 아름다운 곡을 많이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의 장상이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사제가 되려면 음악을 포기하게. 만약 음악을 계속하겠다면, 신부가 될 수 없어. 그만둬라.”
이 신학생은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음악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자기의 도구였고, 기쁨이고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음악 없이는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성가는 하느님 말씀을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게 한다.’, ‘말씀이 노래로 선포될 때, 그것은 두 배의 힘을 지닌다.’라면서 성가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기를 낮추는 순명이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결정해야 할 때, 결정 자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결정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의 중심이 되어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파악해야 “예”라고 응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먼저 “예”라고 응답하셨고, 그 뒤에 곰곰이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마태 11,25)라고 기도하십니다.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분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세상의 지혜를 쌓는 것보다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렇습니다. 아버지!”(마태 11,26)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 뜻에 대한 완전한 동의와 기쁨을 표현하십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언제나 옳고 완전하다는 것이며, 성모님께서 “예”라고 응답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예”라고 하느님 뜻에 순명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 뜻에 얼마나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하느님 뜻에 우리도 “예”라고 먼저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은 누구나 여러 번 좌절한다.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실패자는 아니다(존 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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