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징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의 사명을 밝혀줄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올리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순수함과 진솔함을 찾아볼 수 없는 예의와 질문으로 보입니다. 정말 확인하고 싶어서, 확인하고 인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그러한 증거를 보여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서,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표징이라는 표현을 통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의심 없이 드러내 줄 이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상의 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역에서, 곧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이적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보여주신, 병자 치유와 악령 제거와 빵의 기적과 죽은 이를 소생시킨 일 등의 모든 기적을, 마술사가 펼치는 마법의 결과 정도로 치부하려는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빵을 많게 하신 기적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 이루신 기적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온” 모세의 만나에 더 의미를 두고서 그런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잘못은 예수님의 사명에 관한 증거 이전의 주제를 바탕으로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거부하던 사람들입니다. 결코, 이들은 예수님이 설파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에 대하여 우리와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예배가 그들이 몰두하는 일 전부였으며, 이 예배는 오로지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사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믿음에 필요한 동기, 다시 말해서 표징을 받아들이기 위한 동기를 추구할 의지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회개에 대한 의지 없이 이러한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일이며, 따라서 이들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분명하기에,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요나의 표징이란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을 말하며, 이 표징은 사람의 아들이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을 예고하는 예언적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요나의 설교로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여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과 십자가상 희생을 통하여 특정 지역을 넘어 세상의 구원을 이루신 분이기에 요나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나아가 세상을 회개로 이끌어 구원을 선사한 예수님의 바로 그 십자가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1코린 1,23)처럼 보인 그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초월하고 있으니,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표징 요구를 통해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바리사이들을 향해,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질타하시며 회개의 길로 들어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께 얼마든지 청하고 기대할 수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를 통한 마음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하루,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하고 이웃에게 다가서는 가운데, 요나보다 더 크시고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을 기리며 찬미하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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