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을 내는 씨
복음저자 마태오는 이 장에(마태 13장) 일곱 개의 비유 말씀을 소개하는데, 가라지와 보물과 진주와 그물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언급되며,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비롯한 그 밖의 비유 말씀은 다른 공관 복음인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호수의 비유 말씀’이라 일컬어지는 이 일곱 개의 비유 말씀이 같은 날 동일한 군중을 대상으로 설파되었다고 보기는 힘드나, 마태오가 이처럼 한자리에 모아 놓은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모두 하늘 나라(=하느님 나라)에 관한 탁월한 비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에 관한 첫 번째 비유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점은, 고대 팔레스티나 사람들은 씨를 먼저 뿌리고 나서 밭을 가는 농법을 자주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비유 말씀에 나오는 여러 가지 토양, 곧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 등은 바로 이러한 농법에서 비롯된 현실입니다.
비록 우리가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방법으로 씨를 뿌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길에 떨어져 새가 쪼아 먹은 씨들이 있는가 하면, 겨우 싹을 틔웠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라버리는 씨들이 있고, 잘 자라서 어려움을 벗어났다고 믿은 것조차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린 씨들이 있다는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불행한 결과가 씨 뿌리는 사람의 무모한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비유 말씀이 역점을 두고 있는 내용은 마지막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들이 백 배 또는 예순 배 또는 서른 배의 결실을 냄으로써 씨 뿌리는 사람은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모습은 절망감을 안겨 줄 수 있으나, 참 농부는 그 결과가 겉보기에 무모하게 보이는 현실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이라는 세 공간에서 아무런 성과 없음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좋은 땅에서 거둔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라는 세 번의 놀라운 결실이 세 번의 성과 없음을 충분히 극복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실패만을 거듭한다고 제자들이 느낄 때, 예수님은 분명히 이 비유 말씀을 자주 들려주셨을 것입니다. 이 체험은 바로 그들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과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씨 곧 하느님의 말씀을 뿌리는 사명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격려와 함께, 이 사명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 하늘 나라는 분명히 건설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마치시면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씨로 비유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가운데, 우리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가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하느님 나라로 성장을 거듭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뛰어드는, 의미 있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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