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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4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7-24 조회수 : 91

듣고 보는 신앙인

 

 

바리사이들과 같은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잘못도 예수님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들이 알아듣기를 원하지 않고, 알아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존재도 그분의 가르침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자유 의지의 문제이므로, 그렇게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아버리기로 작심한다면, 이웃이 어떤 말을 하거나 아무리 두들겨도, 이 의지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 인생의 평범한 상황이나 아니면 중요한 순간에,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타인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일 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착하는 욕구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었거나, 이러저러한 유혹이 불러일으키는 잡음으로 귀가 먹었을 때, 우리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 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말씀이나 장면이 나를 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또는 그것들이 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더욱 큰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깨닫지 못하고서, 그냥 그대로 안주하는 삶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러한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을 이웃에게, 나아가 하느님께 돌리는 행태 또한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 이러한 행태를 멈추도록 종용했을 때, 분개하거나 불의하다고 외칠 때도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우리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던 것처럼,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과 어긋나 그분의 말씀 듣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다거나 당신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로막으셨던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마다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책임은 다른 사람들 또는 하느님께 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에게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허락하셨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볼 수 있는 눈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출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로 양성하신 사도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보내주시고, 이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 안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신앙인의 자세를 점검하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의 바람에 좀 더 눈을 여는 가운데, 신앙인들은 누구보다도 편견 없이 잘 보고 잘 듣는 사람들임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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