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루카 11,1-13
주님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할 때 행복해지는 이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완전한 기쁨’이 무엇인지 묻는 레오 형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오 형제는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눈먼 이가 눈을 뜨고, 마귀 들린 이가 해방되며, 죽은 이가 살아나는 기적,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우리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완전한 기쁨이 아닐까?’ 미래에 이루어질 눈부신 ‘성과’에서 기쁨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성인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성인은 말합니다.
“레오 형제여, 우리가 한겨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굶주리고 얼어붙은 채 우리 수도원 문을 두드릴 때를 상상해 보게. 문을 열어준 동료 수사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당신들은 누구인가?
어서 꺼져버려!’라며 모욕하고, 심지어 몽둥이로 우리를 때려 눈밭에 내동댕이칠 때, 바로 그 모욕과 박대와 고통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쁘게, 그리고 묵묵히 견디어 낸다면, 거기에 완전한 기쁨이 있네.”
행복은 미래의 어떤 보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가장 비참해 보이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데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이유를 ‘주님의 기도’를 끈기 있게
바칠 때 찾아오시는 ‘성령’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시고, 빵을 청하는 친구처럼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이고, 그러면 성령을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행복입니다.
그 행복은 미래에 내가 이뤄낼 무언가에 둘 때 사라집니다.
우리 안의 자아는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합니다.
에덴동산에서의 뱀은 하와에게 지금을 즐기지 말고 더 가지고 더 먹고 더 강해지는 것에서 행복을 추구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부터 ‘행복’을 갈망했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이 제 삶의 첫 기억이었기에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고, 잠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날 하루 친구들과 정말 행복하게 놀았기 때문입니다.
‘아, 행복하면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구나.’
저는 막연한 공포 속에서 살지 않기 위해 행복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뒤로 저의 행복의 조건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예쁜 짝꿍과 앉는 것, 커서는 좋은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세상에서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일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했습니다.
애인이 있으면 잃을까 불안했고, 돈이 많아도 예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어디를 가든
저보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마치 산의 정상에 오르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정상만 바라보고 가면 도달해도 허무하기만 하지만, 더 큰 피해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에게 오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무엇을 ‘소유’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행복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가능합니다. 저는 『하.사.시.』를 읽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제자들이 부러웠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좋은 일을 한다는 양심의 평화와 하느님께 사랑받는 느낌. 저도 이것을 위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교에 들어갔고 그때 “나는 네게 다~ 주었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지옥과 같이 느껴졌던 신학교가 천국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성령은 내가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데 힘이 들지 말라고 주시는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그것 때문에 항상 주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의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뱀을 이기려면 지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가장 완전한 그릇은 그리스도의 심장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바라는 것을 바라도록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우리 마음은 자아의 욕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마음과 동기화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그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느낍니다.
성령의 도우심은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래서 성령을 부르는 청원 기도입니다.
꾸준히 바치되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나의 이성과 마음이 주님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이성과 마음에 합치된다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바로 지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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