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
본디 오늘은 성녀 마르타의 기념일이었으나, 선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2021년 1월 26일)을 승인하고 확정함으로써,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습니다. 또한 성 라자로는 전례력에는 빠져 있었지만, ‘로마 순교록’은 12월 17일자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이자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의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 결과와 일부 지역교회 전례력에서 이미 세 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오늘을 세 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하여 확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세 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앞서는 내용을 보면,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을 때,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하는 말씀과 함께 며칠이 지난 다음 베타니아로 가십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하는 원망 섞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과의 대화에서도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하지만,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며 좀 더 성숙한 신앙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마르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까이에서 주님을 섬기는 봉사를 통해 차츰 완전한 신앙고백으로 나아간 참된 제자의 모범이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다음 부분에서 우리는 마르타처럼 원망 섞인 목소리로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는 마리아를 만나며, 마리아 역시 마르타처럼 동일한 신앙고백에 이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슬픔과, 이 슬픔의 원인이 된 라자로의 죽음 앞에 예수님은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시며”, “끝내 눈물을 흘리시며”,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슬픔의 원인을 제거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 남매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의 참 신앙이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하는 그분 말씀의 완성을 맛보게 합니다. 물론 우리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이 당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과 함께, 당신의 부활을 준비하고 예고한 사건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이 세 남매는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부활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인의 모범으로, 아울러 형제애의 본보기로 공경받고 계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이 이들 세 남매를 특별히 사랑하신 이유도 이들 안에서 참된 부활 신앙인의 모습과 진정한 형제 관계를 체험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신앙적으로 부족함이 많지만, 오늘의 세 남매처럼 주님의 도우심으로 완벽한 신앙고백에 이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형제 또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살피는, 기억에 남을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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