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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7-30 조회수 : 156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마태오 13,44-46 
 
인생은 아름다워? 보물을 찾지 못하는 당신에게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십니까? 분명 사랑받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외롭거나 불안할 때. 혹은 열심히 사랑을 줬는데, 상대방은 전혀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할 때.
요즘 많은 분이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특히 가족 안에서 "부모님이 날 정말 사랑하시는 걸까?", "내 배우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자녀들과 왜 이렇게 소통이 안 될까?" 이런 고민들 말이죠.
사랑하는데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사랑을 표현해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 대체 왜 이런 걸까요?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런 사연이 나왔습니다.
한 아버지가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답니다. 밤낮으로 일하고, 자녀들에게는 늘 엄격한 모습만 보였죠.
자녀들은 아버지를 '강하고 무뚝뚝한 분'으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낡은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자녀들 몰래 찍은 사진들과 함께, "내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이 아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는 글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깨닫고는 오열했다고 해요.
이처럼 우리는 사랑이 너무 커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강론에서는 이 보이지 않는 사랑의 비밀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억하십니까? 아버지 귀도는 어린 아들 조슈아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숨기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운 놀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끔찍한 수용소 생활마저도 '놀이'로 포장하며 아들을 지켜내죠.
아빠는 목숨을 걸고 아들을 사랑했지만, 조슈아는 전쟁이 끝난 후에서야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 그 사랑의 진정한 깊이와 크기를 다 알지 못합니다.
왜 조슈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이는 우리 모두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 특히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때로는 그 존재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나 매일 비추는 햇빛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곤 하죠.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마태 13,44)고 말씀하십니다.
이 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나라를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에게 사랑받는 느낌입니다.
이 사랑받는 느낌은 우리의 자존감이 되어 미래를 살아갈 힘을 줍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거나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존감이 부족하여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부모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마치 공기와 햇빛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큰 사랑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마치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숨 막히는 순간에야 그 존재를 절감하는 것처럼 말이죠. 
 
둘째, 자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존에만 몰두하니, 부모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돈만 바라는 사람이 옆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보이겠습니까? 그 사람이 보이면 나의 돈까지 내어놓아야 하는데?
이처럼 자신의 생존 욕구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을 느끼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직접 부모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나의 생존을 포기할 때, 비로소 부모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지금 그 부모가 곁에 없을 수도 있지만, 그분들의 희생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의 신학교 시절 이야기입니다.
당시 신학교 생활은 제게 지옥 같았습니다. 자유롭던 제가 갇혀 사는 듯했고, 모든 것이 불평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틀을 단식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배가 고프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실 때 얼마나 배고프고 고통스러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의 불평과 불만이 사그라들고, 그토록 지옥 같던 신학교가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의 '뱀', 곧 자아의 욕망이 줄어들수록 에덴동산을 주신
주님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십일조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가 어릴 적, 어머니의 사랑이 진짜인지 의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저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하시는 곳에 찾아가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어머니의 하루를 함께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시고 받은 단팥빵과 우유를 제게 건네주시던 순간, 저는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모든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천국의 행복을 찾았습니다.
작은 희생, 작은 포기가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죠. 
 
그 밭에 묻힌 보물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그분의 사랑을 느끼기만을 목숨을 다해 원하는 이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그 크고 위대한 사랑을 깨닫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의 사랑은 나도 힘들 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막연한 사랑을 느끼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드립니다.
"내 생존을 위해 쌓아둔 작은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 한 잔, 매일 습관처럼 하는 게임 시간, 혹은 늦잠 자는 30분.
이런 작은 욕구들을 주님께 봉헌하며 이웃을 위해, 혹은 기도 시간을 위해 내어놓으십시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의 눈을 마주 보며 10분만 대화해 보세요.
그 작은 포기가 당신 안의 자아를 줄이고, 그 빈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 곁의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보십시오." 
 
배우자에게 평소 하지 않던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를, 자녀에게는 그들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 주는 시간을, 부모님께는 따뜻한 안부 전화 한 통을 먼저 건네세요.
나의 작은 희생과 노력이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통해, 부모의 사랑, 나아가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만큼 느껴지는 법입니다. 
 
사랑은 클수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의 자아의 욕망을 줄이고 모든 것을 내어줄 때
그 거대한 사랑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참된 자존감을 회복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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