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60km 정도에 위치한 카이사리아 필립피, 오늘날의 바니아스로 향하십니다.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후, 늘 곁에 두고서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기 위한 차원에서 당신의 신원에 대하여 여쭈십니다. 그러나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직접적인 질문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는 간접적인 질문으로 열립니다. 제자들을 배려하시는 질문으로 추정됩니다. 직접적인 질문이었다면, 잘못된 대답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물으시니 전해 들은 이야기를 취합해서 그대로 전해 드리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진리의 수호자 세례자 요한, 또는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 아니면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정리해서 답을 드립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정말 묻고 싶으셨던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열두 사도를 대표하여 베드로가 나섭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묻고 싶으셨던 질문만큼이나, 정말 듣고 싶으셨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답변을 하느님의 알려주심, 곧 계시로 규정하시나, 베드로의 다음 모습을 보면 아직 계시 이해에는 다가서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베드로 위에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교회를 세울 것을 약속하시며, 매고 푸는 죄의 용서에서 드러나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줄 하늘 나라의 열쇠를 건네주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이 이러한 자리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신 이유입니다. 제자들이 당신이 누구신지 어느 정도 알아보게 되었지만,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시간입니다. 스승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소개될 1차 수난과 죽음과 부활 예고 말씀의 배경이며, 이 예고 말씀은 2차, 나아가 3차에 걸쳐 반복될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에 대한 체험 또는 수용이 없다면, 열두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조차, 사탄 곧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 우리에게, 당신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지시며,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똑같은 신앙고백을 듣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고백 속에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늘 스며 있는 고백, 더는 주님의 함구령이 필요 없는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어떠한 수난과 죽음의 현실이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부활의 영광을 희망하며, 당당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펼쳐나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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