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마태오 18,1-5.10.12-14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법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스승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마태 18,1)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품고 사는 이 질문, ‘어떻게 하면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이 질문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세상이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배와 가장 위대한 선장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야겠습니다.
1912년, ‘신조차 침몰시킬 수 없다.’라고 불리던 배, 타이타닉호가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그 배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당대 최고의 선장으로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선장은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다고 하며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려다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심하기는 해야 했습니다.
그는 ‘가장 빠르고 화려한 첫 항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달렸습니다.
항해 도중, 다른 배들로부터 최소 일곱 차례나 ‘빙산이 떠다니고 있다.’라는 ‘작은 경고’들이 무선 전신으로 날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경고들을 무시했습니다.
거대한 배, 화려한 승객들, 자신의 명성이라는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함’에 취해, 다가오는 ‘단 하나의 위험’을 외면한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그의 위대함은 1,500명이 넘는 영혼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는 정말 ‘큰 사람’이었을까요?
작은 것을 작게 보는 큰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큰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작은 것을 크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처럼 겸손하여서 잃어버린 작은 양 한 마리도 결코 작게 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는, 파리의 평범한 카페 종업원입니다.
그저 그런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작은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집 욕실 벽 속에서 50년도 더 된 낡은 보물상자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상자의 주인인 ‘단 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합니다.
수소문 끝에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상자의 주인을 찾아 몰래 상자를 돌려준 아멜리에는, 멀리서 그가 어린 시절의 추억에 눈물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충만한 기쁨을
맛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선행 속에서 가족과 같은 친구들이 생기고 남자 친구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아멜리에가 과연 ‘큰 사람’일까요, ‘작은 사람’일까요? 정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들꽃과 같은 아름답고 큰 사람입니다.
그녀는 잊혀진 ‘단 한 사람’의 작은 행복을 찾아주는 일이 온 세상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학자나 부자가 아니라,
‘어린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 18,4)
어린이는 겸손합니다.
그 어린이와 같은 마음은 작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존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 18,14)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며, 우리가 ‘큰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일본 홋카이도의 아주 작은 시골 기차역 이야기입니다.
이용객이 없어 폐역 예정이었던 ‘구 시라타키’라는 간이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 그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여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철도 회사는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그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역을 유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3년 동안 기차는 아침 7시 15분과 오후 5시 8분, 하루에 단 두 번, 오직 그 소녀만을 위해 멈췄습니다.
수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거대한 철도 회사가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움직인 것입니다.
마침내 소녀가 졸업식을 마친 2016년 3월 26일, 수많은 사람의 박수 속에서 마지막 열차가 떠나고
기차역도 비로소 소임을 다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하느님의 사랑의 실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철도 회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업’이 아닐까요?
우리 각자의 삶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가족일 수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일 수도,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소임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가 다스리게 될 고을의 수를 아는 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어느 한계까지 사랑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머리만 신경 쓰며 손발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시신 기증과 같은 것을 통해 자기 몸을 내어주어야만 한다면, 손끝 발끝까지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중세 시대,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높은 첨탑 꼭대기에 놓일 천사 석상을 조각하던 한 석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천사의 등 뒤 날개까지 세밀하게 조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조수가 “스승님, 어차피 아무도 보지 못할 텐데 왜 보이지 않는 등 뒤까지 그렇게 공을 들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석공은 조각을 멈추고 조수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자네도 보지 못하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보고 계시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일은 간단합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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