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해야 하는 것
어제 복음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재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떠나려는 형제를 공동체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 곧 ‘형제를 얻는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 이전에 교회공동체가 솔선수범해야 할 중대한 사명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각기 구성원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이므로, 구성원 상호간의 갈등과 알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하늘 나라의 열쇠, 다시 말해서 지상에서 맺고 푸는 권한을 부여받은 베드로가 입을 엽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물론,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선택된 이래, 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직접 듣고 보아 배운 덕에, 최소한 용서는 해야 하는 것임을 잘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용서의 정도 또는 한계가 궁금하여 여쭙니다. 형제를 얻는 일에 관한 교회의 공적인 직무를 맡게 될 베드로로서 궁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충만을 상징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를 제안하지만, 예수님은 충만의 충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일흔일곱이라는 숫자로 답하십니다. 그러니까 용서에는 끝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형제를 얻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그 유명한,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종의 비유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10,000탈렌트 대(對) 100데나리온! 고대의 화폐 단위를 보면,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탈렌트는 그리스의 화폐 단위로서 1탈렌트는 6,000드라크마인데, 1드라크마는 로마의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1데나리온으로서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부연하면, 예수님 당시에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화폐가 사용되었습니다. (데나리온, 콰드란스 등) 로마의 화폐는 일반적으로 세금을 낼 때, (렙톤, 드라크마, 미나. 스타테르, 탈렌트 등) 그리스의 화폐는 상거래 때, 그리고 유다 화폐 세켈은 십일조나 헌금 등 종교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다시 한번 환전상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10,000탈렌트/100데나리온은 60,000,000일(164년) 품삯/100일 품삯이 됩니다. 비교가 거의 불가한 대조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 덕분에 살고 있음에도, 형제를 용서하는 데 인색한 우리의 속 좁은 인생을 개탄하고자, 예수님은 다소 과장된 수적 대비법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은 늘 우리에게 자비로우신 분으로 머무시기를 바라면서, 정작 이웃에게 너그럽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하루에도 여러 번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하는 주님의 기도를 올리면서 죄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용서라는 화두를 마음에 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운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는, 사랑 넘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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