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셈법
어제의 말씀을 바로 뒤따르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자녀로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비유로 일러주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어떤 구체적인 특정 장소를 떠올리게 됩니다.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가 찾아가는, 이름하여 일용직 인력시장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초조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하다가, 운이 좋으면 하루를 아침부터 행복하게 일하고, 운이 나쁘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초조와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장소가 바로 이 인력시장입니다.
예전에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아무리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른 아침에 바로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운 좋은 사람, 일자리 문제로 조바심을 떨치고 일만 하면 되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등이 그 뒤를 이었을 것이며, 마지막 시간에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온종일 초조감에 떨었던 불행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품삯이 지급될 때 소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에 온 사람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 밭 주인에 대한 불만입니다. 계약에 따라 품삯으로 정한 한 데나리온 - 1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을 말합니다 - 에 대한 불만입니다. 사실 이 불만은 밭 주인의 후한 마음을 겨냥하는 역설이 되고 맙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거저 주어진 일자리, 그러기에 아침부터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된 ‘일자리’라는 구원 선물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면서, 자신보다 늦게 일자리를 얻게 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축하하며 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허락해준 밭 주인의 후한 마음을 예찬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마치 우리보다 늦게, 때로는 아주 늦게,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거저 받은 형제자매들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며 사랑 실천에 더욱 매진해야 하는 신앙 자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형제자매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구원이라는 선물을 맛보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과분한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참모습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 하루, 일찌감치 우리를 불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더 기도하고 더 봉사하고 더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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