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합니다. 이 배에는 많은 동료들이 함께 타고 있었고, 이 사람은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배에서 청소나 빨래 같은 잡일은 하는 사람이었지만, 선한 마음을 가지고 동료들을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은 모두 바닷사람으로 거칠었지만, 이 사람의 선함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존경의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재판장에 서게 되었고,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선하고 착한 사람인데 왜 감옥에 갇혔을까요? 억울한 모함을 당한 것일까요? 아니면 실수로 죄를 지은 것일까요? 모두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탄 배는 해적선이었고, 그는 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에서 또 동료들에게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도, 해적선이고 해적이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주님의 배에 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만 노력하는 악의 배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배에 타고 있느냐에 따라 구원에 이를 수도 있고 반대로 멸망의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종종 꼭 성당에 가야 하느냐? 꼭 신앙생활을 해야 하느냐? 그냥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주님께서는 사랑 가득하신 분이라고 하는데, 겨우 신앙생활 하지 않았다고 착한 사람을 벌하겠느냐? 등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라는 배를 타고, 그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훨씬 쉽게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배를 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착하게 살아도 해적선을 타고 있으면 해적이 될 뿐입니다. 교회라는 배를 타면 착하지 않아도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라고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라고 하시면서 구원의 길이 ‘좁은 문’임을 말씀하시지요. 좁은 문이라 하는 것은 편안하고 넓은 길이 아니라, 희생과 회개, 사랑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문을 닫으면 아무리 두드려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지요. 문밖에서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적인 종교 체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미사에 참석하거나, 신앙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삶 속에서 진실한 회개와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라는 배에 타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주님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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