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천재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까요? 꽤 오래전, 네덜란드에 갔다가 고흐 박물관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긴 줄이 있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이렇게 줄 서서 기다려 관람하는 것이 의미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제 또 이 박물관에 올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저였지만 큰 감동이었습니다. 자기 감정을 시각화했음을 볼 수 있었고, 그의 붓질은 격정과 생명의 리듬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제가 봐도 그는 분명 천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이 위대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 자신이었습니다.
남이 인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인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의심과 불행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자기를 스스로 인정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도,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통해 나를 긍정할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만드신 ‘나’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쓰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작품이 실패작일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허투루 사용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께서 나를 만드시고 사용하고 계심에 용기를 내며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기준만을 가지고 살아가면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하느님과의 관계를 두텁게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선으로 사람들이 올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형식적이고 자기 권위에만 매달리면서 하느님께 사람들이 가는 것을 막아버리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잘 간직하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나의 이웃에게 참된 믿음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의 명언: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 불확실함과 아픔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말이고, 마음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지만, 누군가가 그 무게를 나누어질 때 그 십자가는 더 이상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의 증거가 된다(유정민, ‘앉지 못하는 아이, 곁에 앉아 준 마음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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