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화요일
토끼와 놀고 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토끼를 잡고 싶은데 몸통을 잡으면 또 다리를 잡으면 몸을 비틀어서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답답한 아이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토끼를 한 번에 사로잡아 힘을 못 쓰게 하려면 어디를 잡아야 해요?”
엄마는 “목덜미나 귀를 잡으면 꼼짝할 수가 없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얘야, 사람을 사로잡으려면 어디를 잡아야 할까?”
과연 어디를 잡아야 할까요? 정답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잡기가 어렵다고 하나 봅니다. 토끼처럼 목덜미나 귀를 잡는다고 사람이 잡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잡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물건은 손이나 기계를 이용하면 단단히 움켜쥘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기나 물과 같아서 잡았다 싶은데도 저절로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뿐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잡아야 함께할 수 있으며, 마음을 잡아야 하느님 뜻에 맞게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선 남의 마음을 잡기 전에, 자기 마음부터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기쁨의 삶,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잡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통해 강압적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잡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범을 우리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복음에 이어 율법 학자들의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강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외적인 신심 행위와 형식적 율법 준수만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작 율법의 중심에 있는 사랑을 등한시하는 그들의 태도를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열심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도 외적인 신심 행위와 형식적인 율법을 준수하게 했습니다. 물론 율법의 규정들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미사에 열심히 참석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또 봉사활동에도 앞장서는 것이 중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참된 신앙은 마음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안이 깨끗해야 겉도 진정으로 깨끗해지듯이, 우리 마음을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마음으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부터 확 잡아서 주님과 함께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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