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선언
오늘 복음 말씀은 행복과 불행을 주제로 합니다. 오늘 말씀 앞에 서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는 마태오 복음의 그 유명한 참 행복에 관한 말씀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마태 5,1-12). 그러나 이 두 본문을 비교해보면, 문형과 내용에서 유사한 점 못지않게 다른 점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태오 복음보다 루카 복음의 내용이 간결하다는 점과 함께 불행이라는 주제가 덧붙여 있다는 점, 행복과 불행 선언의 대상이 루카 복음에는 이인칭 복수 ‘너희’로, 마태오 복음에는 삼인칭 복수 ‘그들’로 적시되어 있다는 점 등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제자들은, 일반 군중과 구별되는, 열두 사도를 포함하여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선 사람들을 가리키며, 예수님은 이들이 좀 더 완전한 제자의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먼저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 행복의 대상으로 제시됩니다. 마태오 복음이 개인적이며 영적인 차원에서 이 사람들을 불러세웠다면, 루카 복음은 공동체적이며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언급합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 등등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진 것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람 등을 가리킵니다. 루카 복음에만 등장하는 불행 선언의 대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부유하고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고 지금 칭송받아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그 대상입니다.
마태오 복음과 비교하여, 몇 가지 점을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행복 선언에서, 마태오 복음이든 루카 복음이든, 그 선언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며, 더구나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하는 문구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불행 선언은 문자 그대로의 불행 선언이라기보다는, 경계와 경고의 말씀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저주나 응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또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의 행복과 불행 선언은 분명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며, 영적이 아니라 물리적이며 현실적인 차원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을 기초 삼아 세워질 교회 공동체와 이 공동체를 책임질 지도자들, 곧 사도들이 지금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어떠한 대책을 세우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시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힘과 용기를 내어 달려 나갈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함을 일러주십니다. 불행 선언에서도 저주나 응벌보다는 경계와 경고에 힘이 실려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구원관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적입니다. 굳이 불가의 표현을 빌린다면, 소승적 구원과 대승적 구원을 아우르는 구원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 개개인이 구원되기를 바라시면서 아울러 인류 전체의 구원을 바라시며, 이를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 하늘에서 받을 큰 상으로서의 하느님의 구원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들, 특히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미움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마음 넉넉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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