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매일 강론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강론은 인터넷에 ‘새벽 묵상 글’이라는 이름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5년째입니다. 그러나 제가 쓴 글이 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망설이면서 이렇게 속삭이곤 했습니다.
‘이렇게 망한 강론을 인터넷에 올려도 될까? 혹시 망신당하지 않을까?’
그래도 계속해서 올리던 강론 글이니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고 그냥 올립니다. 혹시 댓글로 부정적인 글을 남길 수도 있으니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망한 강론,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강론인데, 미사 후에 몇몇 신자분들이 다가와서 크게 와 닿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혹시나 하면서 댓글을 보니, 여기에도 칭찬이 가득합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그저 주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작은 것도 크게 만드시는 주님께서는 망한 강론도 마음을 움직이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제가 한 것처럼 착각에 빠졌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능력이 좋아서, 재주가 좋아서 그런 결과를 낸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도구인 나로 주님의 뜻이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탈렌트의 비유’ 말씀을 봅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주인은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두, 한 탈렌트’를 줍니다.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이 돌아와서 셈을 하는 것을 보면 차별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맡은 것에 대한 충실함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섯 탈렌트를 번 사람이나, 두 탈렌트를 번 사람이 똑같이 칭찬받습니다. 하지만 한 탈렌트 받는 사람은 주인을 두려움으로만 대하면서, 땅에 묻어 버립니다.
탈렌트는 당시 매우 큰 화폐 단위입니다. 한 탈렌트가 노동자 약 15~20년 치에 해당하는 품삯입니다.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돈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 버린 사람의 잘못이 무엇인지가 분명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으름도 있지만, 더 큰 잘못은 주인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불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진 분이라는 표현까지 썼던 것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떠나는 사람이 어떻게 모진 분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도구임을 기억하면서 성실하게 주님의 뜻이 펼쳐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을 왜곡하면서 자기 능력과 재주만을 드러내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착하고 성실한 종아!’라는 칭찬을 받을까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꾸중을 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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