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죽음을 이긴 사랑의 표지
[말씀]
■ 제1독서(민수 21,4ㄴ-9)
히브리인들은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에서 체험했던 기이한 일화 하나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한 죄로 뱀에 물린 백성은 (이방인 세계에서) 치유의 신을 상징했던 구리 뱀을 향해 돌아섬으로써 죽음을 모면한 사건을 말합니다. 훗날 복음저자 요한은 이 사건을 십자가상 예수님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이해하고서,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참된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 제2독서(필리 2,6-11)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노래했던 초대 공동체의 찬미가 하나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초대교회가 일찍부터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으로서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의 모든 삶은 따라서 사랑의 선물로 인식되며, 그분의 부활은 이 사랑의 승리를 드러낸 사건으로 길이 머뭅니다.
■ 복음(요한 3,13-17)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는 니코데모는 진리에 열려 있던 사람이었으나,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거듭남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듭남은 예수님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지고 뚜렷해질 것입니다.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써, 그분은 세상과 세상의 가치에 관한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새김]
악과 죽음은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증오와 전쟁과 약자 억압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 모순을 너무나 자주 체험합니다.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는 논리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며, 사람들의 사라짐이 모든 것을 허무로 돌려버리는 현실 앞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악과 죽음은 정말 모순이며, 그 어떤 설명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로지 믿음 말고는….
믿음은 이러한 현실은 끝내 지배되고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믿음 안에서 인간은 다른 세상, 곧 사랑 넘치는 세상을 일으켜 세우도록 초대됩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여 움직여나가면서 인간은 파괴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현실은 하느님 바로 그분께 참여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거저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본디 처형 도구였으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는 순간부터, 십자가를 사랑의 표지로 받아들이신 순간부터, 악과 죽음이라는 모순을 제거하는 찬란한 빛의 원천으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는 악과 죽음을 이긴 사랑의 승리, 사랑의 표지임을 가슴에 새기며, 세상의 온갖 모순과 싸워나가는, 생명 넘치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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