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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9-14 조회수 : 133

복음: 요한 3,13-17 

 

십자가는 선택적 예언이다 

 

 

이번 주일은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냅니다.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핵심입니다.

이 십자가 현양 축일이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로 구원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 구원의 핵심이 되게 할 것인지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인간은 본래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자아의 지배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탈출기에서 당신을 ‘나다!’로 표현하십니다.

우리 안에 ‘나’가 있는데, 당신을 ‘나’로 표현하시니 헛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 짓눌린 상태의 상징적인 모습이 탈출기에 나옵니다.

우리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옛 자아인 ‘파라오’의 명령에 종살이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존 욕구, 곧 탐욕-성욕-지배욕으로 우리를 종살이시킵니다.

이 욕망 때문에 고생하며 죽어간 이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언’이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보내시어 파라오의 뱀을 물어 죽이는 또 다른 뱀을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뱀으로 변하여 파라오의 뱀을 잡아먹습니다.

광야에서 이 상징은 더 완전한 예언이 됩니다. 바로 구리뱀을 장대에 매다니 뱀에 물렸던 이들이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구리뱀은 어떻게 내 안의 뱀의 독을 없앨 수 있을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예언을 ‘성취하고 실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대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마치 죽지 않는 구리로 된 뱀처럼, 당신을 죽이셨지만 부활의 영광으로 되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덕분으로 이제 뱀의 예언이 십자가의 예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예언을 성취하면 구원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을 성취한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지는 못합니다.

구리뱀의 예언 자체가 예수님께 구원이 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예언은 우리 안에서 성취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믿음과 구원은 그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는 영화 ‘매트릭스’만 한 것이 없습니다.

네오가 믿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SF로 그린 영화입니다.

네오는 모피어스에 의해 자신이 선택된 자, 바로 ‘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네오는 잘 믿지 못합니다.

모피어스에게 훈련도 받지만, 점프 프로그램에서는 언제나 땅에 고꾸라지고 맙니다.

그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믿음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네오는 예언자를 찾아갑니다.

예언자 오라클은 “넌 ‘그’가 아니야. 미안하구나, 얘야.”라고 말합니다.

이는 정말 ‘그’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아직은 그 믿음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을 해 줍니다.

“모피어스는 널 너무나 굳게 믿고 있어서…. 널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거야. 너는 선택을 해야만 해.

한 손에는 모피어스의 생명이, 다른 한 손에는 너 자신의 생명이 달렸지.

너희 중 한 명은 죽게 될 거야. 누가 죽을지는 네게 달렸어.” 

 

네오는 모피어스가 스미스 요원에게 붙잡히자, 오라클의 예언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선택’을 합니다.

모피어스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로. 모피어스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네오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매트릭스의 규칙을 서서히 무시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믿는 만큼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마지막 시험대에 오릅니다.

스미스 요원과의 최후의 대결에서 네오는 총에 맞아 심장이 멎고, 그의 생체 신호는 끊어집니다. 

 

트리니티는 죽은 네오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오…. 난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오라클은 내가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고 했고, 그 남자가 바로 ‘그’가 될 거라고 했어.

그러니 넌 죽을 수 없어. 넌 죽을 리가 없어. 사랑해.” 

 

트리니티의 입맞춤과 함께, 멎었던 네오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매트릭스 안에서 쓰러졌던 네오가 눈을 뜹니다.

이 ‘부활’의 순간, 네오는 마침내 모든 의심을 떨쳐냅니다. 

 

그는 더 이상 매트릭스를 현실로 보지 않고, 그 본질인 녹색의 데이터 코드로 꿰뚫어 봅니다. 

 

스미스 요원들이 쏘는 총알은 그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총알들을 허공에 멈춰 세웁니다.

이때의 네오는 더 이상 ‘믿는’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는’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깨달은 ‘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모세입니다.

네오는 모세의 예언을 살리기 위한 그리스도입니다.

오라클은 모든 것을 계획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같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의 예언을 성취한 십자가에 달린 네오,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니다.

그래서 트리니티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당신을 믿는 이들을 죄에서 해방하실 분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도 나에게는 여전히 ‘예언’입니다.

이 예언을 나에게 그리스도처럼 실현해야 합니다.

저도 사제로 불림을 받았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고 계심을 믿고 싶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생애는 그분의 뜻에 그리스도를 위해 나 자신을 내어놓기로 선택합니다.

이 ‘선택’이 믿음을 주었습니다.

바로 신학교 들어가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 성령을 받음이 곧 나 자신의 죽음이요,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부활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분께서 나를 사제로 부르셨음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작은 죽음으로 많은 이들의 죄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내가 먼저 하나의 예언으로 실현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예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듯, 그분 십자가의 예언은 나에 의해 성취되고 실현될 때

그것이 나의 구원이 되고 이웃의 치유가 됩니다.

하느님의 뜻에 내 뜻을 못 박아보십시오.

이건 선택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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