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큰 예언자!
루카 복음 저자만 전하는 오늘 이야기에서, 두 무리가 나임이라는 고을 어귀에서 마주칩니다. 한 무리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 이끄는 무리이며, 다른 한 무리는 죽음이 이끄는 무리입니다. 죽은 이는 외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는 과부입니다. 일찍 남편을 여위었고 이제 마지막 희망인 외아들마저 떠나버린, 따라서 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생계를 유지해 주며 특히 고된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사라져 버린 이 여인의 사정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딱해 보입니다. 이와 같은 여인의 딱한 사정이 고을 사람들의 동정심 또는 연민의 정을 자극하여 장례 행렬이 큰 무리를 이루도록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선한 고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인이 지금 겪고 있는 큰 고통 앞에 깊은 연민을 느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님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같은 불행 앞에서 매우 민감하신 분으로 움직이십니다. 예수님은 망연자실한 이 여인을 향하여 짤막하게, 그러나 감정에 북받친 진솔한 마음으로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십니다.
이어서 상여로 다가서 관에 손에 대시고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죽었던 이 젊은이의 부활은 예수님의 능력과 자비를 드러내 주는 사건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님의 능력이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렇게 능력과 자비는 구원의 때가 다가왔음을 밝혀줍니다.
예수님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는 이 젊은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이 장면은 열왕기에서 엘리야가 사렙타 지방을 방문했을 때, 어떤 과부의 숨진 아들을 소생시킨 뒤, 그녀에게 돌려준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우선 구약을 대표하는 예언자와 동등한 예언자로 여겨질 수 있으나, 양자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예수님은 당신 말씀의 능력으로, 곧 말씀 한마디로 몸소 죽은 이를 살리신 데 비해, 엘리야는 별도의 몸짓을 통하여 하느님께 간청하여 소생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한낮에 많은 사람이, 그것도 이 과부와 그의 아들을 잘 알고 있었고,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서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장례 행렬에 참여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직접 보는 가운데, 예수님이 이루신 놀라운 행적은 사람들의 입에 “우리 가운데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는 찬미의 노래를 올려놓습니다. 구원의 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의 이 찬미의 외침은 두 가지 점을 예고합니다. 큰 예언자는 말씀과 행동으로 메시아를 예고한 구약의 모든 예언자보다 더 큰 예언자를 말하며, 이 위대한 예언자의 등장은 하느님의 찾아오심으로 표현되는 구원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징표가 됩니다. 결국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 예고된 메시아 예수님은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임이 오늘의 기적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나며, 그러기에 이 사건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퍼져나갑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인 지방의 가련한 여인의 처지뿐만 아니라, 이 여인의 고통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 무리를 이룬 고을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구약의 모든 예언자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예고한 메시아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오늘 하루,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당신의 구원 능력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예수님은 본받아, 평소보다 조금 더 이웃들을 살피고 도울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 가슴 뿌듯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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