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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9-16 조회수 : 117

양초 한 자루, 성냥 한 갑, 압정 한 통을 줬습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코르크판에 양초를 고정하되 불을 붙였을 때 촛농이 아래쪽 탁자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불가능해 보입니다. 양초를 성냥과 짧은 압정으로 고정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은데, 고정하더라도 떨어지는 촛농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답은 간단했습니다. 압정 통을 양초 받침으로 쓰고, 그 받침을 코르크판에 압정으로 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답을 알게 되면, ‘이게 뭐야~~’라고 합니다. 압정을 담은 통까지 사용해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삶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중요하고, 명예가 중요하고, 세상의 지위가 중요하고, 사람들의 인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음을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인정받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나인이라는 고을의 과부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과 함께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가 장례 행렬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장례 행렬을 보고서 그저 ‘슬픈 일’ 정도로만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너머의 것을 보셨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상황은 어머니에게 큰 비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과부는 경제적, 사회적 보호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안 됐다’ 정도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관에 손을 대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가엾은 마음’은 사람들이 보이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깊은 자비가 표현된 말씀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계속 찾아오시는 주님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죽음과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지금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간직한다면, 세상의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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