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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7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9-16 조회수 : 114

하느님의 역설적인 지혜

 


어떤 사람들인지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관계없이, 언제나 그저 모든 것을 부정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상당한 동족들, 부정할 수 없는 가장 분명한 사실까지도 부정하려던 상습적인 불신자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이 세대 사람들이라 칭하십니다. 이 표현은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는 표현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직접 보고 들은 놀라운 사건들을 체험했으면서도, 하느님 따르기를 마다한, 선민(選民)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 사람들을 부산스럽고 고집스러운 아이들,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 무리에 비교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혼인 잔치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춤을 추라고 고무하고, 초상집에서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곡을 하라고 부추기는 무리입니다.

 

우리가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면, 그 무엇도 우리의 귀를 열게 할 수 없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습니다. 탁월한 금욕주의자였던 세례자 요한이 먼저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사람들은 그를 마귀 들린 사람으로 단정했습니다. 이어서 사람의 아들이 와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듯, 먹고 마시자, 이번에는 그를 먹보요 술꾼으로 취급합니다. 먹보요 술꾼, 결코 호의적인 평가가 아닌 것은 분명함에도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하면서, 이 비난이 그분을 모욕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최우선시하던 유다인들, 그 가운데서도 지도자들에게 이 비난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하나의 모독적 언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역설적으로 이 모독은 예수님의 존재와 사명을 밝혀주는 언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죄와 윤리적 결함으로부터 그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결국 그들까지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특히 행동을 통하여 줄곧 이 사명을 천명하실 것이며, 그러할수록 그분의 적대자들, 곧 상습적인 불신자들은 저항과 분노의 정도를 더욱 높여나갈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세리와 죄인들, 나아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신앙인은 자비와 용서 베풂과 거리가 먼, 고집스러운 무리의 저항에 부대낄 각오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역설을 통한 하느님의 지혜, 이것이 바로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하는 선언의 토대가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사업을 지속시키고자 사도들을 기초 삼아 이 지상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구원의 대상에는 마귀 들린 사람이든, 먹보요 술꾼이든, 세리와 죄인이든, 어느 누구도 제외될 수 없음을 가르치시며 행동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속해 있는 사회 단위에서 따돌림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서 친구가 되어,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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