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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9-17 조회수 : 99

루카 7,31-35 

 

지혜의 종착지는 겸손한 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시대 사람들을 향해 깊은 탄식을 쏟아내십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그들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 주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 7,31-32) 

 

예수님께서는 앞서 세례자 요한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셨고(7,29-30),

당신 자신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구원의 기쁨을 나누려 하셨습니다.

요한은 단식하는 금욕주의자로 왔건만 그들은 “마귀 들렸다”고 비난했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기쁨의 잔치에 함께하셨건만 그들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으며 그 어떤 상황에도 불평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왜 사람들은 그토록 노골적인 방식으로 하느님의 잔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 어떤 기쁨과 슬픔의 부르심에도 무감각하고, 심지어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을까요?

저는 오늘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그 깊은 뿌리에는 인간의 ‘교만’이 숨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내가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나를 나 스스로 온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 말입니다. 

 

2003년, 스티브 잡스는 우연한 건강 검진 도중 췌장에 암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그의 췌장암은 매우 희귀한 유형으로, 의료진은 “바로 수술하면 99% 치유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생명을 살릴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의료진의 권고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직관력과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 현대 의학은 불완전하다.

나는 나 자신을 내가 알아서 치유하겠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수술 대신 과일 위주의 식단, 침술, 약초 치료, 영매 치료 등 온갖 대체의학에 매달리며 1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 버렸습니다. 

 

1년 뒤, 그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마침내 대체의학이 무용지물임을 깨달았을 때, 이미 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제야 수술대에 올랐지만, 이미 치유될 확률은

10%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2011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천재였지만, 정작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최고 전문가,

즉 의사들의 조언을 교만 때문에 거부했던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이 비극적인 사례는 우리가 겪는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기쁘고 슬픈 감정을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외부적 성공에서 찾고, 슬픔은 내가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으로 치부하며 하느님 없이도 온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며, 창조주이신 하느님 없이는

불안한 감정을 진정한 평화로 바꿀 수 없고, 세상의 덧없는 기쁨을 영원한 기쁨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20세기 인지 치료의 창시자로 ‘정신의학의 황제’라 불렸던 아론 벡(Aaron T. Beck, 1921-2021) 박사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 치료에 혁명적인 인지 행동 치료(CBT)를 개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한 위대한 의학자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과 사고방식을 스스로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으며, 그의 치료법은 전 세계 정신과 의사들에게 교과서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적 능력과 치료법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그에게 엄청난 명성과 권위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말년은 깊은 고독과 허무함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의 딸이자 역시 저명한 심리학자인 주디스 벡(Judith S. Beck)은 아버지의 100회 생일을 기념한 인터뷰에서 이런 언급을 합니다. “아버지는 평생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의 깊은 감정적인 허무함이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셨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큰 명예를 추구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성공 중독’은 우리에게 피리소리처럼 유혹적으로 들리지만, 결국 우리를 더 큰 불안과 공허로 이끕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자신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는 쾌락이나 권력 추구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하려는 ‘의미 추구의 의지’이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 이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끝없이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의미를 찾아야만 이 세상 모든 고통을 참아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미 유신론자입니다.

창조자를 만나지 않고 자기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빅터 프랭클이 지혜의 자녀입니다.  

 

부모는 압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음을. 아이도 압니다.

부모 없이는 맛있는 음식이나 장난감이 소용없음을.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품 안에서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고, 기쁨과 슬픔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가 부모의 부름에 순종하고 의지할 때, 그 아이는 평화로워집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AA)’ 모임은 바로 이 ‘피조물의 겸손’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했습니다.

AA 모임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는 알코올에 대한 무력함을 인정했고, 우리 자신의 삶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인정했다” 입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술을 끊겠다는 의지를 넘어, 자신 스스로는 자신의 중독된 감정과 행동을

결코 통제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한계에 대한 처절한 자각을 의미합니다.  

 

AA의 공동 창시자인 빌 윌슨(Bill Wilson)은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지성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빌 윌슨은 병원의 침상에서 “하느님, 당신이 계시다면,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절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자만과 통제하려는 의지를 내려놓고,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어떤 존재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놀라운 영적 체험이 일어났고,

그 후 그는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경험을 바탕으로 AA의 두 번째 단계인 “우리보다 위대한 힘, 즉 하느님께서 우리의 온전성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가 탄생했습니다.  

 

술은 자기 스스로 감정을 기쁘게 만들려는 노력이었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창조자와 그 창조자를 믿는 공동체에서 힘을 얻지 않으면 감정 회복이 불가능함을 안 이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큰 피리를 불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사랑과 자비의 복음이며,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은총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깊은 곡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눈물이며, 우리의 죄와 고통에 대한 당신의 연민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우리를 위해 흘리는 피와 눈물로 알아볼 수 있듯, 기쁨 또한 그 슬픔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 믿음의 초대에 응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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