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덩치에 맞지 않게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벌레’입니다. 인간은 이 벌레보다 훨씬 큰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나면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실험이 생각납니다.
커다란 거미를 보여주고는 “이 징그러운 거미가 당신에게 뛰어오를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거미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귀여운 거미는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까이 가서 보려고 했습니다.
어떤 이름표를 붙이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 안에서 이름표를 붙이곤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게을러. 나는 미루는 악습을 가지고 있어. 나는 아무 능력이 없어.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야.’ 등등의 이름표를 붙이고 또 그 이름표에 맞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에게만 붙이는 이름표만 문제가 아닙니다. 남들이 나에게 붙이는 이름표, 또 내가 남에게 붙이는 이름표 역시 문제가 됩니다.
실제로 이 이름표의 이름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름표를 붙여야 할까요? 긍정의 이름표, 되고자 하는 바람의 이름표, 무엇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담긴 이름표를 붙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시몬의 집으로 초대받으십니다. 그런데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향유 옥합을 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당시 여인의 머리카락은 명예와 신분의 상징인데, 이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행위인 것입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속으로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라고 말합니다. 시몬은 이 여자에게 ‘죄인’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채권자와 빚진 이들의 비유로, 누가 더 하느님께 더 큰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응답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7,48)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이름표를 붙여주십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7,50) 하시면서, 새로운 이름표로 죄를 넘어 평화를 누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이름표를 붙이고 있나요? 나에게 또는 나의 이웃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영화 ‘록키’ 대사 중에서).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