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3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어떤 아이가 오랫동안 키웠던 애완견이 병으로 죽었다며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애완견을 키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슬픔이 너무 컸고, 이런 슬픔이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뒤, 이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애완견을 다시 키우겠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그때, 또 이 슬픔이 반복되는 것이 싫다며?”라고 묻자, 아이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까?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오겠지만, 그전까지 열심히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이별의 슬픔보다 행복을 주는 기쁨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과 달리 최고의 행복을 주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마음이 어쩌면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의 이 세상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 삶을 마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더 큰 사랑을 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까지 당신 사랑으로 주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 사랑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주님 사랑을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회에서는 가족 관계가 사회적, 종교적으로 매우 강력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가족의 방문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혈연적 관계보다 더 중요한 가족의 정의를 제시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듣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듣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의 혈연 중심 사회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하느님 말씀 안에서 맺어지는 영적 가족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단순한 혈연관계에 더 집중합니다. 그러나 진짜 행복이 과연 이 안에 있을까요?
내 신앙 공동체를 ‘영적 가족’으로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단순한 혈연관계 등을 중시하면서, 가지고 있던 신앙까지도 남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성모님께서 보여주셨듯이 자기 삶 안에서 “예, 그렇습니다.”라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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