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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9-26 조회수 : 120

루카 9,18-22 

 

나의 영성 수준 측정법: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군중은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리고 이어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던져집니다.

우리는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의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한국의 어떤 개신교 목사가 설교 단상에서 “하느님, 까불지마.

내 말 안 들어주면 나한테 혼나”라고 외치거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금송아지를 하느님이라 부르며 자신들이 주는 여물이나 받아먹고 밭이나 갈아줘야 할 존재로 인식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그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 혹은 우리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누구라고, 어떤 분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은 인간적인 관계의 성숙과 매우 흡사합니다.

마치 부모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성장하면서 변하듯이 말입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의 헌신과 재산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부모를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봉' 정도로 생각하다가 결국 관계를 파괴하고 폐륜까지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는 부모를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아닌 도구로 전락시킨 교만한 인식에서 비롯된 비극입니다. 

 

그러나 다른 자녀는 성장하여 자신 또한 부모가 되어보니, 비로소 자신들의 부모가 얼마나 위대한

사랑과 희생으로 자신을 키워냈는지 깨닫고 진정으로 공경하게 됩니다.

이처럼 부모를 향한 인식이 성숙할수록 그들의 삶 또한 더욱 풍요롭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그분의 참된 모습, 곧 온 우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으로 온전히 인식해 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은 때로는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함 앞에서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깊은 겸손과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구약성경의 야곱은 처음에는 불콩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형 에사우처럼 하느님의 선물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가로챈 결과로 형 에사우가 군사 400명을 이끌고 자신에게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나 두려워 떨며 밤새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이때 야곱은 비로소 자신이 속임수로 얻으려 했던 장자권의 무게와 그 뒤에 숨겨진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분께 온전히 의탁하며 겸손해진 야곱은, 결국 형 에사우와 극적인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점점 우리가 편하게 여겼던 예수님을 참 하느님으로 인식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마지막 때, 온 우주의 주인이신 그분을 감당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3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가장 가까운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타볼 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 그들은 두려워 몸을 떨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어졌습니다. 

그들은 평소의 친근한 스승 예수님이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룩한 하느님의 현존을 마주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비로소 온전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도, 요한 묵시록에서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았을 때 죽은 듯이 그 발 앞에 엎어졌습니다(묵시 1,17 참조).

이는 예수님을 인간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한계를 넘어, 그분의 신적인 영광을 온전히 인식했을 때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사랑 가득한 분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그분을 인간의 범주에 가두지 않고 하느님으로 인식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영적 성장은 아이들이 부모를 알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엔 부모가 자신들에게 당연하게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나중에 자신들도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의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 것인지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 자체가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는 점점 더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깊이 살펴야 합니다.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토는 '베네딕토 규칙서'를 통해 수도자들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겸손의 사다리'로 제시했습니다.

이 사다리는 단순히 고개를 숙이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수록 그분의 위대함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깊이 깨닫는 영적 인식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겸손의 사다리'의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면, 수도자는 더 이상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자신의 참된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 베네딕토는 이 겸손의 사다리를 통해 인간의 교만을 벗어던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한낱 인간적인 스승이 아닌, 지극히 높고 거룩하며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온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이신 창조주이심을 빠르게 인식해 나갈 때, 우리는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 가득한 분이시라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그분을 인간적인 친구나 소원 성취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여겨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고, 우리가 마침내 그분을 온전히 마주할 준비를 하는 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으로 만드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인간으로 볼 때가 아니라 하느님으로 볼 줄 알 때 나도 하느님이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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