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0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05 조회수 : 117

루카 17,5-10 

 

믿음만이 줄 수 있는 해답: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정한 성공을 좇아 죽도록 열심히 살았는데도, 막상 정상에

서 보면 '이게 전부인가?' 하는 공허함에 휩싸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과 명예, 명성을 다 거머쥐었지만 결국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해답 없이는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해도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삶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전 세계인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며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명배우였습니다.

누구보다 밝고 유쾌해 보였지만, 내면에는 극심한 우울증과 존재론적인 고뇌가 있었습니다.

그는 201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코미디에 대해 "나는 웃음으로 자신을 숨긴다.

웃음은 때로 당신의 유일한 방어선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고백은 "나는 항상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해했다" 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그가 찾지 못한 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이 해답 없이는 우리의 존재가 흔들리고, 모든 행위는 결국 허무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사춘기 시절, 거울 속의 저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며,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를 수없이 물었습니다.

이 해답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해답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통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밭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주신 '단팥빵과 흰 우유', 아버지의 투박한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보며, 저는 의심 없이 확신했습니다.

'아, 저분들이 내 부모님이 맞구나.

나를 위해 저렇게 애쓰시는 분들이구나.' 그 양식을 먹고 굳은살을 묵상하며, 저는 제가 부모님 없이는 존재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믿음은 저의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곧, 나의 창조자가 누구이시고,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자 완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카 17,5) 하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비유와 '쓸모없는 종'의 비유를 통해 믿음의 본질을 설명하십니다.

종이 주인의 명령을 다 하고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깊은 본질을 드러냅니다. 믿음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주인)이 누구이신지 알고, 나(종)는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이 앎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주시는 '양식'과 그 양식에 대한 우리의 '묵상'을 통해 자라납니다.

우리가 그 양식을 먹고 묵상하며 그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깨달을 때,

비로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을 '금송아지'처럼, 즉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세상의 왕이자 주님이라고 착각하며, 그 끝에는 허무만이 남을 뿐입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모델인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과 뛰어난 통찰력(하느님께서 주신 양식)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부모의 이혼과 불행한 가정 환경 속에서 그 재능을 타인을 속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는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부터 조종사, 의사, 변호사 등으로 위장하여 엄청난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주인으로 착각했고, 자신의 재능을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기보다 욕망과 생존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는 "나는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 때 가장 자유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성공과 쾌락을 경험했지만, 그의 내면은 늘 깊은 공허함에 시달렸고, 결국 FBI에 체포됩니다. 

 

그는 체포된 후에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자신이 받은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양식'을 먹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세상의 왕이자 주인으로 착각했기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얻지 못하고 허무의 굴레에 갇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사랑(양식)을 알고, 자신을 ‘쓸모없는 종’으로 여기며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주인의 더 큰 사랑과 행복을

얻어냅니다.

이들은 믿음의 본질을 깨달은 이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늙은 소를 보십시오.

최노인과 함께 40년을 넘게 일한 이 소는, 늙고 병들었지만 주인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귀한

존재임을 압니다.

주인이 주는 양식을 먹으며 주인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합니다.

이 소에게 최노인은 무엇이든 주고 싶은 마음을 갖습니다.

이 늙은 소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인과의 관계 속에서 찾았기에, 그 존재 자체가 행복했고, 주인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감동적인 예는 우리에게 '그분을 알고 나를 아는 믿음'이 가져오는 행복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다시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생각해 봅시다.

같은 아버지의 양식을 먹고 자란 두 아들, 하지만

그들은 확연히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양식(유산)을 가지고 떠나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깊이 묵상했고,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고백하며 돌아옵니다. 

 

그는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 여기며 아버지의 자비에 매달렸고, 아버지는 그를 위해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는 잔치를 베풉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아버지가 누구이신지를 깨달음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그에게 양식은 묵상을 통해 믿음의 완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어떻습니까? 그는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양식을 매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동생을 미워하며,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만을 바랐습니다.

그는 양식에 대한 묵상이 없었기에,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했고, 아버지를 자신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에게 양식은 묵상이 없었기에 믿음의 성장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분노와 시기심 속에서 허무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저절로 증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그분을 더 알려고 노력하고, 그분이 주는 양식에 우리의 깊은 묵상이 더해질 때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그분을 알아가면, 그분은 더 커지시고 나는 더 작아집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하느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막연히 구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더 알게 하소서. 이를 위해 매일의 양식을 주소서. 이 양식에 대한 저의 깊은 묵상을 더하게 하소서. 이를 통해 당신의 위대함을 매일 더 알아가게 하소서.

그래서 제가 누구인지, 저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라고 기도합시다. 

 

매일매일 그 양식에 대한 우리의 깊은 묵상을 더할 때, 우리는 '쓸모없는 종'이라 고백하며 겸손하게 그분께 의탁할 수 있게 되고,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 한 알처럼 작더라도 산을 옮기고 바다에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기적을 이루는 위대한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