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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03 조회수 : 127

루카 14,12-14 
 
참사랑과 거짓 사랑 쉬운 구별법 
 
 
우리는 가끔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을 구별하지 못해 상처를 입거나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없어지려면, 참사랑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은 늙은 왕이 세 딸에게 '사랑의 고백'을 요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왕은 자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딸에게 가장 큰 보상을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첫째 딸 고너릴은 "말로 다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생명과 명예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왕은 흡족해하며 왕국의 3분의 1을 줍니다. 
 
둘째 딸 리건은 한술 더 떠, "아버지를 사랑하는 기쁨 외에 다른 모든 기쁨은 저의 감각에서 죽은 것과 같다"라고 맹세합니다.
왕은 기뻐하며 또 3분의 1을 줍니다.
그들의 고백은 정확히 아버지 리어왕의 시선에 맞춘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그 대가로 왕국을 보상받았습니다.  
 
이제 왕이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 코딜리어의 차례입니다.
"너는 무슨 말을 하겠느냐?"
"아무 것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보아라."
코딜리어가 마침내 입을 엽니다. 
 
"저는 폐하를 제 의무(my bond)에 따라 사랑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저는 언니들처럼 남편을 두면서 제 사랑 전부를 아버지께만 바친다고는 맹세할 수 없습니다."
리어왕은 격노합니다.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에 대한 '보상'을 주는 데 눈이 멀어, '의무'로 사랑을 고백한 코딜리어를 추방합니다.  
 
"나의 행위는 반드시 내가 사는 세상의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것이 CCTV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CCTV가 많아서 범죄율이 낮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보이는 시선'에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내가 지배받는 시선이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이 세상 누군가의 기대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욕망, 즉 에덴의 '뱀'처럼 '너 자신이 기준이 되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 CCTV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뱀의 소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 CCTV는 나에게 '의무'를 주는 나의 주인이고, 내가 사는 왕국의 왕입니다. 
 
리어왕의 궁정은 이 '보상'이라는 세상의 CCTV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고너릴과 리건과는 다르게 코딜리어는 누구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CCTV는 '하늘의 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땅의 왕(리어왕)이 아닌 하늘의 왕을 섬겼고, 하늘에 정해주는 이를 사랑해야 하는 의무만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하늘에 속한 존재임을 드러냈습니다. 리어왕이 두 딸에게는 쫓겨나서 결국 막내에게 향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나이가 많이 먹도록 참사랑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CCTV를 정확히 꺼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14,13-14) 
 
예수님께서는 '보답할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할 때, 바로 그때 '너는 행복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CCTV가 감지하지 못하는 행복입니다. 
'금도끼 은도끼'의 정직한 나무꾼이 이와 같습니다.
그는 산신령이 내민 화려한 '보상(금도끼)'이라는 CCTV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의 CCTV 앞에서 자신의 '진실(쇠도끼)'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은 그의 정직함에 감동하여 모든 것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늘을 향해 솔직한 이들은 하늘의 보상을 받습니다.  
 
성 니콜라오 주교는 가난한 세 딸을 돈 때문에 팔아넘겨야만 하는 한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몰래
지참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던져 넣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어떤 감사나 보답도, 즉 세상의 CCTV에 찍히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하늘의 CCTV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산타 클로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코딜리어처럼, 하느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의무(bond)', 즉 하늘의 CCTV 앞에서 사랑하고
봉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분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CCTV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하늘을 위해 사는 사람, 하늘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참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을 분별하고 싶거든 그 사람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면 됩니다.
세상의 CCTV는 우리를 기록하지 못할지라도 하늘의 CCTV는 우리를 똑똑히 비추고, '의인들이 부활할 때' 가장 큰 영광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 한 번만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누구의 시선 때문에 움직이는지.
세상의 시선에 휘둘리는 자는 결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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