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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10 조회수 : 36

산책하다가 귀여운 강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 보이지 않았고, 강아지만 잔디밭 위에서 킁킁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이 강아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1) 최대한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2) 도망쳤다.

맞습니다. 2번, 도망쳤습니다. 만지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그 귀여움을 사진에 담으려고만 했을 뿐인데도 도망쳤습니다. 그렇다면 도망쳤다고 제가 화를 내며 강아지를 쫓아갔을까요? 아닙니다. 도망치는 것은 동물의 본성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왜 도망치면 비겁하다고 말할까?’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일까요? 도망치면 ‘비겁하다, 못났다, 쓸데없다’ 등의 부정적인 말이 쏟아집니다. 모든 동물의 본성은 도망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도망쳐도 본성에 맞춰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닐까요?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본성 이상의 지위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성만을 유지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로 가득 찬 상태로 들어갈 수 없어서 영혼이 정화되는 시간, 또 나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본성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도 우리 본성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남을 죄짓게 하는 것과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죄짓게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단호한 경고(‘불행하여라’)를 하십니다. 특히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하시지요. 이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또 용서도 그렇습니다. 한 번도 용서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라고 말씀하시지요.

 

남을 죄짓게 하는 것과 용서 모두 우리가 실천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냥 본성을 따르면서, 남이 죄짓든 죄짓지 않든 상관없이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에, 주님께 도움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만 있어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을 뛰어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의 명언: 삶이란 아주 미묘해서, 열리기만을 고대했던 문을 이미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브리아나 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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