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1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15 조회수 : 86

우리 몸은 10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세포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영향을 받고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따라서 나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실제로 되기 때문입니다.

 

“환장하겠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놀라서 장이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생각과 감정이 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 주는 말입니다. 따라서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면, 세포들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명령을 받아서 아무렇게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생각과 감정이 나에게 유익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는 내게 유익함을 줄 수 없습니다. 포기, 절망의 감정은 실제로 나를 포기하게 하고 절망 속에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철저히 긍정적인 감정으로 나를 이끕니다. 더군다나 하느님 나라라는 희망을 품게 해서 내 몸을 그렇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믿음을 갖춰야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종말의 때가 오기까지 시련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 말씀은 이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는 것을 첫 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루카 18,1)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가 등장합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루카 18,2) 인물이었습니다. 정의와 자비가 전혀 없는 최악의 재판관인 것입니다. 또 과부는 당시 사회에서 남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장 힘없고 가난하며 소외된 계층을 상징합니다. 그녀가 기댈 곳은 오직 재판관의 ‘올바른 판결’ 뿐입니다. 그래서 ‘줄곧... 졸랐다’(루카 18,3)라고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과부의 정의로운 청원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귀찮고 괴로워서’ 판결을 내려줍니다. 하물며 하느님께서는 어떠하시겠냐는 것입니다. 포기하지도, 절망하지도 말고 하느님께 끈질기게 부르짖는 그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이제 이 비유의 핵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부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며 그 믿음을 지키고 있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 믿음을 계속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