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겟 픽세이션(Target Fixation)의 법칙: "보는 곳으로 간다"
1240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잔혹하기로 소문난 이슬람의 사라센 군대가 수도원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녀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원장 수녀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원장이었던 성녀 클라라는 병석에 누워 꼼짝도 못 할 만큼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부축을 받아 일어나 성체광(Monstrance)을 높이 쳐다들고 성벽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녀의 눈은 담을 넘으려는 칼과 창, 그리고 살기 등등한 적군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성체광 안에 계신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적들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섬기는 이 여종들을 지켜주소서."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체광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압도적인 빛과 영적인 기운에 눌린 사라센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땅의 군대를 이긴 것은 칼이 아니라, 하늘을 응시하는 한 수녀의 시선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께 '타겟 픽세이션(Target Fixation, 주시 이끌림 현상)'이라는 법칙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단순히 "보면 간다"는 속담이 아닙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발견된 무서운 뇌과학적 현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지상의 적군 벙커를 폭격하기 위해 급강하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폭탄을 투하하고 기수를 올려야 할 시점에도, 수많은 베테랑 조종사들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자신이 맞추려는 타겟(벙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계속 돌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격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타겟에 충돌해 폭사했습니다.
뇌가 위기 상황에서 두려움의 대상을 응시하는 순간, 생존 본능마저 마비되고 몸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타겟 픽세이션'의 기원입니다.
이 죽음의 법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은 F1 레이서들입니다.
시속 300km로 코너를 돌 때, 벽에 부딪힐 위험은 항상 존재합니다.
전설적인 레이서 아일톤 세나는 신입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벽을 보지 마라. 벽을 보는 순간 네 차는 벽에 박힌다. 트랙의 탈출구(Exit)를 보라."
사고가 나는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보면, 드라이버의 헬멧(시선)이 트랙이 아니라 충돌할 벽을 향해 고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으면 안 돼, 박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벽을 쳐다보지만, 뇌는 부정어를 인식하지 못하고 시선이 가는 대로 핸들을 꺾어버립니다. 벽(절망)이 아니라 길(탈출구)을 봐야 빠져나갑니다.
사람은 보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이 시선의 법칙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물 위를 걷는 베드로입니다.
칠흑 같은 밤, 베드로가 배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기적처럼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은 오직 '탈출구'이신 예수님의 눈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물에 빠진 이유를 정확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겁에 질려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마태 14,30).
파도가 갑자기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중력의 법칙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의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거센 바람(벽, 장애물)'으로 옮겨가 '타겟 픽세이션'이 일어난 순간, 그의 영혼과 육체는 그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위를 걷고, 바람을 보면 빠져 죽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의 징조를 예고하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절할 것이다."
전쟁, 지진, 기근... 세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재난(벽)을 쳐다봅니다.
뉴스를 보며 공포에 떨고, 무너지는 경제를 보며 한숨 쉽니다.
재난에 시선이 고정되어 영혼이 그쪽으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F1 레이서와 같은 처방을 내리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세상은 땅을 보며 "아이고 죽겠네" 하고 벽에 부딪히지만, 신앙인은 고개를 들어 구름 타고 오시는 사람의 아들, 곧 우리의 영원한 '탈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이 흔들릴수록 하늘을 봐야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 하권에는 이 시선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도탄 성을 겹겹이 포위했을 때, 엘리사의 사환은 '적군(벽)'만 보고 공포에 질려 소리칩니다.
"아이고,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그는 타겟 픽세이션에 걸려 죽음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평온하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 편이 그들보다 더 많다." 그리고 사환의 눈을 열어줍니다.
사환의 눈이 열리자, 그는 보았습니다.
적군보다 더 크고 웅장한 불마와 불수레가 온 산을 뒤덮고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것을.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땅을 본 자는 절망했고 하늘을 본 자는 승리했습니다.
자연 만물도 이 이치를 알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를 보십시오.
해바라기의 뿌리는 어둡고 축축하고 지저분한 흙 속에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해바라기는 땅을 보며 "아이고 더러워라" 하지 않습니다.
해바라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태양의 궤적만을 쫓아 고개를 쳐듭니다.
진흙 속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머리는 태양을 향해 있기에, 해바라기는 썩지 않고 밝고 노란 꽃을 피워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이 불 뱀에 물려 죽어갈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땅에 있는 뱀만 쳐다보다가 독이 퍼져 죽어갔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뱀을 없애주는 대신,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 것이다."(민수 21,8).
이것은 '시선의 훈련'입니다.
독이 퍼지는 고통 속에서도 억지로 고개를 들어 높이 달린 것을 바라보는 행위,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습니까? 경제적 위기, 질병, 실패라는 벽이 여러분을 향해
달려옵니까? 그 벽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전투기 조종사들처럼 그것만 보다가는 그곳에 추락합니다.
시선을 돌려, 그 너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탈출구를 뚫어지게 바라보십시오.
"사람은 보는 곳으로 간다."
이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재난을 보면 재난 속으로 빠지지만, 주님을 보면 주님 품으로 가게 됩니다.
오늘,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여러분의 구원자를 바라보십시오.
그 시선이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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