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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02 조회수 : 181

루카 10,21-24 
 
진리의 기쁨을 누리는 법: 네비게이션을 보지 말고 아버지 손을 잡아라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세상과 단절된 채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녀의 가정교사 앤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손바닥에 글씨를
썼습니다.
인형을 주며 'D-O-L-L'이라고 썼지만, 헬렌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손가락장난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졌습니다.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데리고 펌프가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펌프질을 하여 시원한 물줄기가 헬렌의 한 손에 쏟아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물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다른 한 손바닥에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썼습니다.
'W-A-T-E-R' (물) 바로 그 순간, 헬렌의 영혼에 번개 같은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생생한 단어가 내 영혼을 깨웠다. 그것은 빛과 희망과 기쁨을 주었고, 나를 자유롭게 했다."
헬렌이 언어를 깨우친 것은 머리로 고민하며 땅을 팔 때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의 인도하심(손)과 위에서 쏟아지는 물(은총)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을 때, 지혜가 선물처럼 주어진 것입니다.
참된 앎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빛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루카 10,21)라고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을 '공부'해서 얻는 지식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논리로 증명되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체험되는 분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는 무신론적 지식인 형 이반과 신심 깊은 동생 알료샤가 등장합니다.
이반은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논리정연하게 나열하며 하느님을 부정합니다.
그의 논리는 너무나 완벽해서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악마이거나
무능한 거야." 이 차가운 지성의 공격 앞에서 동생 알료샤는 말문이 막힙니다.
그는 논쟁으로 형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알료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형에게 다가가 입을 맞춥니다.
그 단순한 사랑의 행위, 논리가 아닌 온기(입맞춤)가 닿는 순간, 이반의 견고했던 무신론의 성벽은 무너져 내립니다.
하느님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논쟁이 아니라 입맞춤으로 만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내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 아닙니다.
내비게이션을 끄고, 조수석에 앉아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하느님은 그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농사는 내 땀과 노력으로 땅을 파서 소출을 얻는 행위입니다.
대신 하느님은 '만나'를 주셨습니다.
만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지면에 하얗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줍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불안해서(내비게이션) 몰래 많이 거두어 저장하려 했지만, 그것은 다 썩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내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농부'가 아니라, 매일매일 하느님의 은총을 줍는 '거룩한 거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파는 것을 멈출 때, 하늘의 양식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참 지식의 기쁨은 겸손하게 부여받는 것이지, 굴을 파듯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 영적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서커스 곡예사』 이야기에서 공중그네의 비밀을 말합니다.
공중그네에는 공중으로 몸을 날리는 '플라이어(Flyer)'와 그를 잡아주는 '캐처(Catcher)'가 있습니다.
곡예사는 말합니다. "플라이어의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공중에서 제가 맞은편 봉이나 캐처를 잡으려고
팔을 뻗어 발버둥 치면, 둘 다 손목이 부러져 떨어져 죽습니다.
제 할 일은 그저 팔을 뻗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력한 캐처가 내 손목을 정확히 낚아챕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공중그네에서 내가 행복을, 내가 구원을 잡으려고(Digging) 아등바등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공중에서 힘을 빼고, 위대하신 캐처(하느님)가 나를 잡아주실 때까지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잡으려 하면 추락하고, 잡히기를 원하면 비상합니다.
이 모습이 철부지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고 진리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 위한 모습입니다. 
 
작아집시다. 그러면 잡아주실 것입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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