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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03 조회수 : 61

복음: 마태 15,29-37: 많은 병자를 낫게 하시고, 빵의 기적을 베푸심. 
 
오늘 복음은 두 가지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하나는 병든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치유를 받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군중이 굶주렸을 때 예수님께서 빵을 나누어 먹이시는 기적이다. 이 두 사건은 단순한 기적의 나열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는 표징이다. 병자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산에까지 힘겹게 올라가 그분 발치에 머문다. 이것은 신앙의 행위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믿음은 발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간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 21,1) 말했다. 그들의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발치에 다다른 것은 바로 믿음으로 걸어온 길이었다. 
 
예수님은 군중을 보시며 “저 군중이 가엾구나.”(32절) 말씀하신다. 여기서 쓰인 동사는 헬라어 σπλαγχνίζομαι인데, 이는 내장이 끊어질 듯한 깊은 연민을 뜻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두고 “그리스도의 동정심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식을 품듯 가슴 깊은 사랑”(Homiliae in Matthaeum 52,2)이라고 설명했다. 
 
군중에게 빵을 나누어 주신 사건은 모세 시대의 만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그보다 더 크고 영원한 은총의 표징이다. 성 예로니모는 “광야에서의 빵은 육신을 살렸지만,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신 빵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Commentarii in Matthaeum 15,33.) 말한다. 또한 성 암브로시오는 이 기적을 성체성사와 연결하며 “주님께서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린 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교회가 오늘날 성체성사 안에서 행하는 바로 그 신비의 원형”(De Sacramentis IV,5,23)이라고 가르쳤다. 
 
교회는 이 기적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성체성사의 예표로 보아 왔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신 이 사건은 성체성사를 예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주셨다.”(1335항) 예수님의 자비는 차별이 없었다. 병자이든, 가난한 이든, 배고픈 이든, 모두를 품으셨다. 대림 시기를 사는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단순히 묵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의 자비를 삶 안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말처럼 “성찬례에서 받은 그리스도의 몸을 모독하지 않으려면, 먼저 길거리에서 굶주린 이들의 몸을 돌보라.”(Homiliae in Matthaeum 50,3).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분, 먹이시는 분, 자비로우신 분임을 드러낸다. 대림은 그분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맞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병든 이웃을 돌보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며, 자비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산 위에 머물며, 그분이 주시는 참된 생명의 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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