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2월 1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2 조회수 : 54

복음: 마태 11,16-19: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장터에서 아이들이 서로 놀이하며 불평하는 비유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도, 또 당신 자신도 거부한 모습을 고발하신다. 요한은 금욕과 단식으로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그는 마귀가 들렸다.”(18절) 했고,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며 기쁨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은 “먹보요 술꾼”(19절)이라 비난했다. 성 예로니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풀이한다. “아이들이 장터에서 서로 불평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요한의 엄격함도, 그리스도의 자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개를 권하면 듣지 않고, 기쁨을 노래하면 응답하지 않는다.” (Commentariorum in Matthaeum II, 11,16) 이는 곧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어떤 형태로든 거부하는 마음의 완고함을 보여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역시 덧붙인다. “주님께서는 요한과 당신을 서로 대조시키며 말씀하신다. 이는 두 방식이 모두 하느님께서 보내신 것이며, 목적은 하나였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쪽 모두를 거부하였다.”(Homiliae in Matthaeum Hom. 37,1) 즉,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 백성에게 다가오셨지만, 믿음 없는 마음은 어떤 형태의 은총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19절) 여기서 지혜란 곧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며,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지혜는 당신의 일들로 드러난다. 요한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행적으로, 그리고 믿는 이들의 변화된 삶으로 나타난다.”(Sermo 33,3) 따라서 요한의 단식과 예수님의 식탁 친교는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의 지혜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나는 혹시 하느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시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은총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오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요한처럼 회개를 촉구하는 준엄한 목소리로, 어떤 때에는 예수님처럼 위로와 기쁨으로 오신다. 그 두 길 모두가 구원의 길이다. 
 
“지혜는 그 행위로 드러난다.” 말씀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달라진다. 죄에서 벗어나 회개의 삶을 살게 되고, 동시에 자유와 기쁨 안에서 형제들과 식탁을 나누게 된다. 교회는 이 두 차원을 함께 살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대림 시기,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는 마음을 열어, 요한의 목소리 안에서 회개의 부르심을, 그리스도의 잔치 안에서 기쁨의 초대를 함께 받아들이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삶의 증거가 될 것이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