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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4 조회수 : 66

마태오 11,2-11 
 
행복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276대의 자동차와 감사 일기 
 
 
2004년 9월 13일, '오프라 윈프리 쇼'의 방청석에는 276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차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쇼의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외쳤습니다. 
 
"여러분 의자 밑을 보세요! 상자가 있을 겁니다. 그 상자를 열어보세요. 열쇠가 들어 있는 사람이
바로 새 차의 주인공입니다!"
사람들은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청석에 앉은 모든 사람의 상자에 차 열쇠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스튜디오는 비명과 환호성으로 가득 찼고, 오프라 윈프리는 눈물을 흘리며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모두에게 차를 드립니다! (Everybody gets a car!)" 
 
12월11일
사람들은 그녀를 '성공한 여자', '기부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이 처음부터 이토록 빛나고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과 학대 속에 자랐고, 14세에 미혼모가 되어 아기를 잃었으며, 마약에 손을 대어 감옥에 갈 뻔했습니다.
그녀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고,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녀를 지옥에서 건져 올린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감사 일기'라는 작은 습관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부터인가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감사한 것 5가지를 찾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고통스러워도, 잠들기 직전 5분 동안만큼은 행복하게 하루를 마감하기로 '착한 뜻'을 세웠습니다.
그 짧은 5분의 평화를 얻기 위해, 그녀는 낮 동안의 모욕을 참아내고, 유혹을 이겨내고, 긍정적인 것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착한 뜻'이 그녀를 마약과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려, 세상을 돕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순간의 쾌락 vs 마지막의 평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루 중 언제 가장 기분이 좋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을 언제로 삼느냐에 따라 행복을 찾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마지막 순간을 위해 찾는 것이 '지혜'이고,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찾는 행복의 방법이 '지식'입니다. 
 
지혜는 지금의 광야와 미래의 부활을 말하지만, 지식은 지금의 즐거움과 이후의 공허함이나
죄책감을 낳습니다. 따라서 어느 순간의 행복에 주안점을 두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행복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구약 성경의 에사우를 보십시오.
사냥에서 돌아온 에사우의 코끝을 찌른 것은 붉은 팥죽의 냄새였습니다.
배고픔에 눈이 먼 그의 '지식'은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지금 당장 배를 채우는 게 행복이야. 미래의 축복 따위는 지금의 허기를 달래주지 않아."
그는 동생 야곱에게 외칩니다.
"형, 나 배고파 죽겠어. 그 맏아들 권리가 지금 당장 무슨 소용이야?"
결국 그는 찰나의 포만감을 위해 가문의 영원한 축복인 장자권을 팔아넘깁니다
그가 팥죽 그릇을 비우고 난 뒤 남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배부름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평생을 두고 흘려야 할 통곡의 눈물만이 남았습니다. 지금의 만족이 미래의 축복을 삼켜버린 비극입니다. 
 
손끝의 말초적인 쾌락에 신경을 곤두세우면, 정작 생명의 중심인 심장은 무감각해지고 평화를 잃게 됩니다.
대문호 헤밍웨이를 보십시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쓴다"는 철칙을 지키며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었고 성공한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끝, 즉 저녁의 평화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명예와 돈은 그에게 내면의 평화를 주지 못했고, 결국 그는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화려한 스타가 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전 세계가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잠들기 전의 평화를 알지 못했습니다.
약물 없이는 잠들지 못했고, 공허함 속에 36세의 나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을까요? 과정의 행복과 성공은 추구하였지만, 결말의 기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처럼 아침에는 바위를 밀어 올리려 애쓰지만, 저녁에는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보며 절망하는 삶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사일기라기보다는, 그 감사를 잠들기 전에 매일 쓰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지혜를 찾는 자는 광야로 나간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군중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마태 11,7-8).
사람들이 안락한 도시를 떠나 거친 광야로 나간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그들은 고생을 사서 하며 광야로 나갔을까요?
그들 안에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이 있다"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의심하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당신을 만난 이들이 ‘마지막’에 치유되고 되살아난다는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상은 끝에 주어집니다.
메시아를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끝을 중요시 여기는 이들만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손끝이 아닌 심장의 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손끝의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라, 심장의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손끝은 닿는 순간 짜릿하지만 금방 사라집니다. 그러나 심장의 평화는 영혼 깊숙이 남아 우리를 지탱합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이 주는 평화입니다.
하루를 죄짓지 않고 사랑하며 잘 살았을 때, 잠자리에 누워 느끼는 "아, 다 이루었다" 하는 그 뿌듯함, 그것이 바로 심장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그분은 평생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럽고 험난한 광야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다 이루었다."(요한 19,30).
그 짧은 한마디 속에 담긴 평화와 안도감, 그리고 아버지께 대한 뿌듯함. 예수님은 바로 이 마지막 순간의 승리를 위해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이것이 지혜를 가진 이의 삶입니다. 
 
마지막 순간을 위해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결정됩니다. 
로마의 한 야심만만한 법대생이 필립보 네리 신부님을 찾아와 들뜬 목소리로 자랑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제 법학 박사가 될 겁니다!" 신부님은 웃으며 물으셨습니다. 
 
축하하네. 그다음은? (E poi?)" "그다음엔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 명성을 떨쳐야죠."
"좋지. 그다음은?" "돈을 많이 벌어 편안한 노후를 즐길 겁니다." 
 
그렇군. 그다음은?"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습니다. "뭐... 언젠가는 죽겠지요." 
 
신부님은 청년의 눈을 꿰뚫어 보며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청년은 그 마지막 질문
앞에서 벼락을 맞은 듯 멈춰 섰습니다.
지금 당장의 성공 사다리 끝에 무엇이 있는지, 심판과 영원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지식'의 길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선택하여 훗날 사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언제 기분이 좋기를 원하십니까?  
 
순간의 쾌락을 좇다가 밤마다 불안과 허무함에 시달리시겠습니까, 아니면 낮 동안 땀 흘려
사랑하고 광야의 고통을 견딘 후, 밤에는 "다 이루었다"는 평화 속에 잠드시겠습니까?
잠들기 전 5분, 하느님과 단둘이 만나는 그 시간을 여러분 인생의 클라이맥스로 만드십시오.
그 5분을 위해 하루를 산다면, 여러분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광야로 나가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세례자 요한을 만나게 될 것이며, 마침내 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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