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안에 하느님 만나는 법
찬미 예수님!
오늘은 1974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있었던 아주 충격적인 예술 실험 이야기로 문을 열까 합니다.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감행한 '리듬 0'이라는 퍼포먼스입니다.
그녀는 전시장 한가운데에 마네킹처럼 서서 관객들에게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72가지의 도구가 있습니다.
깃털과 장미 같은 부드러운 것부터, 칼과 가위, 심지어 탄환이 든 권총도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6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저 도구로 저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겠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장미를 손에 쥐여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하지만 그녀가 완벽한 침묵 속에 무기력하게 서 있자,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본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가위로 그녀의 옷을 잘라내자, 군중 심리가 발동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녀의 몸에 낙서를 하고, 어떤 이는 살을 베어 피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누군가는 장전된 총을 그녀의 머리에 겨누기까지 했습니다.
그녀가 '멈춰' 있는 동안, 사람들은 그녀를 인격체가 아닌 물건처럼 다루며 자신들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약속된 6시간이 지났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마네킹처럼 굳어있던 마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눈을 맞추며 한 걸음 내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본성을 목격한 '살아있는 눈동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그녀의 상처를 닦아주려 했던 소수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아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쁘게 돌아갈 때는 누가 나를 해치는지,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음과 속도는 사탄의 가장 좋은 은신처입니다.
C.S. 루이스의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보면 고참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최고의 무기는 '소음'이다. 그들이 절대 침묵하지 못하게 해라.
침묵하면 그들은 원수(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즈카르야 사제는 평생 하느님의 일을 했지만, 정작 하느님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계산기'를 더 믿었던 사람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그는 즉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악마는 즈카르야에게 끊임없이 의심의 소음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를 보호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십니다.
바로 '침묵'으로 그를 격리시키신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강제된 피정이었습니다.
입을 닫고 귀를 열라는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즈카르야는 자신의 불신앙을 뼈저리게 식별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자신의 좁은 계산기를 부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즈카르야처럼, 그리고 저 예술가처럼 잠시 멈춰 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피정(Retreat)'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하느님 안에서 침묵할 때, 우리를 갉아먹던 악한 것들은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 곁에 남는 것은, 마리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손길처럼, 우리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주님의 목소리뿐입니다.
사도행전의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살기등등하게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강렬한 빛을 받고 눈이 멉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3일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자신이 알고 있던 율법, 지식, 신념이라는 '계산기'가 강제로 꺼진 상태에서 그는 어둠 속에 홀로 있었습니다.
육체의 눈이 닫히자 비로소 영혼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는 그 3일간의 캄캄한 침묵 속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가 곧 주님임을 깨닫습니다.
눈을 감아야만 진리가 보이는 '즈카르야의 시간'을 겪은 것입니다.
자연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치라는 '절대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밖에서 볼 때 고치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엄청난 재창조가 일어납니다.
만약 답답하다고 고치를 찢고 나오면 나비는 날지 못하고 죽습니다.
즈카르야의 열 달은 단순한 벙어리 생활이 아니라, '의심하는 애벌레'가 '찬미하는 나비'로 바뀌는 필수적인 고치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시 지금 하느님의 뜻이 들리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판단이라는 소음을 끄십시오. 저도 신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흘 동안의 전 인격적인 침묵이 있었습니다.
죽음이 사흘 동안 지속되면 부활을 만나게 됩니다.
며칠 간의 피정이 어렵다면, 단 하루, 아니 단 10분이라도 귀와 눈을 가리고 나를 '0'으로 만들
용기를 내야 합니다.
멈추십시오. 그래야 보입니다.
침묵하십시오. 그래야 들립니다.
그 침묵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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