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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21 조회수 : 38

복음: 마태오 1,18-2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경위 
 
1. 하느님의 징조와 인간의 믿음: 이사야의 표징
이사야 예언자는 불신과 정치적 계산에 빠진 아하즈 왕에게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요청한다(이사 7,11–14). 왕은 겉으로는 경건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자기 정치적 판단을 신뢰하며 하느님의 징조를 거절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이사 7,14)는 징조를 주신다.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약속은 인간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좌절되지 않는다.”(Adversus Haereses III, 20,2) 하였다. 이 예언은 단순한 정치적 평화를 넘어,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오실 것을 예시한다. 그분의 구원은 인간의 힘이나 계책이 아니라, 은총의 방식, 즉 순수한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이 징조가 완성되는 때가 바로 마태오 복음에서 마리아의 동정 잉태로 드러난다. 
 
2. 동정녀 마리아: 믿음의 표징, 순명의 모범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한 것이다.”(22절) 마태오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 완성되었다고 선포한다. 마리아의 믿음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수용한 순명의 믿음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는 믿음으로 잉태하셨다. 그녀의 자궁보다 먼저 마음이 그리스도를 품었다.”(De sancta virginitate, 3) 교리서(490–493항)는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으로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전적으로 응답한 이”로 설명한다. 그녀의 “Fiat”(“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은 인류의 구원 역사를 여는 자유로운 동의의 행위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예’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신다.”(교회 56항)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완전한 수용을 통해, 교회의 모형이 되었다. 그녀 안에서 신앙과 순종, 은총과 자유의 신비가 완전하게 결합된다. 
 
3. 요셉: 침묵 속의 믿음과 구원 계획의 협력자
요셉은 하느님의 신비를 침묵 안에서 받아들인 의로운 사람이다. 그는 율법의 정의와 자비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20절) 그에게 말씀하심을 듣고 순명한다. 그의 순명은 단순히 마리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법적 계보를 완성하는 역할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셉은 믿음으로 마리아와 함께 섭리의 도구가 되었다. 그의 침묵은 말씀을 품은 신앙의 표지였다.”(Homiliae in Matthaeum IV,3) 요셉의 신앙은 청취의 신앙이다. 말보다 깊은 순종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내적 경청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증인이다. 
 
4. “예수”와 “임마누엘”: 구원의 이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현존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21절)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예호슈아(יְהוֹשֻׁעַ)에서 유래하며,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 뜻을 지닌다. 그러나 마태오는 이 구원이 단지 외적 위험에서 해방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의 해방임을 강조한다. 오리게네스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안에서 새롭게 하신다는 뜻이다.”(Commentarium in Matthaeum II,10) 가르친다. 예수는 단순히 하느님을 대리하는 이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임마누엘)이시다.
하느님은 더 이상 멀리서 약속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살아있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우리 가운데 머무르시는 사람으로, 하느님의 친교를 인류 안에 확립하신다.”(교회 8항) 이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표징은 더 이상 예언의 말이 아니라, 살이 되심의 사실로 완성된다. 살이 되심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내재와 구원 연대성의 근거이다. 
 
5. 교의신학적 결론: 살이 되심의 신비와 인간의 응답
교리서는 “살이 되심은 하느님 구원 계획의 중심이며,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 현존하는 방식”(456–460항)이라고 밝힌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성 아타나시오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De Incarnatione Verbi Dei, 54,3)라고 한다. 하느님이신 말씀이 인간의 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간이 하느님과의 친교에 참여하도록 높여졌다는 그리스도론적·인간학적 정점이다. 교리서 460항은 이 구절을 직접인용 하며, “성자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셨다.” 명시한다. 대림의 목적은 바로 이 성화(divinization)의 여정에 우리를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대림 제4주일의 복음은, 이 성육신의 신비가 하느님의 주권적 은총과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리아와 요셉은 모두 이 신비의 내적 참여자들이며, 그들의 순명은 교회의 믿음의 모형으로서, 오늘 우리도 그 응답 안에 초대받는다. 
 
묵상과 실천
나의 일상 안에서 “임마누엘”, 곧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어떻게 체험하는가? 하느님의 계획은 나의 이해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분의 신비에 침묵으로 순명할 수 있는가? 마리아와 요셉처럼, 나의 ‘작은 순명’이 하느님의 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가?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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