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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23 조회수 : 58

복음: 루카 1,57-66: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할례 
 
1.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와 새 창조의 예표
요한은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다(59절). 구약의 할례는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표징이었지만(창세 17,12), 교부들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았다. 성 치프리아노는 말한다. “할례는 여드레째 되는 날에 이루어졌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여드레째 되는 날, 곧 주일에 부활하시어 새 창조의 시작이 되심을 예표한다.”(Epistula ad Fidum, 64) 따라서 요한의 할례는 단순한 유다적 의무가 아니라, 새로운 계약과 부활의 빛을 미리 드러내는 사건이다. 
 
2. 이름의 신비: 요한(은총)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친족들의 전통을 거슬러 아이의 이름을 “요한”(하느님의 은총)이라 정한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명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의 이름은 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은총을 뜻하며, 그가 장차 선포할 복음의 은총을 예고한다.” (Homilia in Matthaeum, IV,6) 요한은 이름 자체로 이미 하느님 은총의 증언자이다. 
 
3. 즈카르야의 입이 열리다.
즈카르야는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확정하는 순간,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미한다. 믿지 못했던 사제가, 아들의 탄생으로 믿음을 회복한 것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묵상한다. “말씀을 의심하여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는, 은총의 이름을 고백함으로써 다시 말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닫으셨던 입술을 은총이 열어 주셨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II,34) 즉, 요한의 이름 안에 담긴 은총이 즈카르야의 혀를 풀고, 찬미로 이끌어 준 것이다. 
 
4. 백성의 두려움과 경외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65절). 이는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경외심이다. 요한의 탄생이 이미 메시아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풀이한다. “요한의 기적적 탄생은 단순히 한 아이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실 분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두려움에 휩싸인 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당신 일을 시작하셨음을 느꼈기 때문이다.”(Sermo 293,3) 
 
5. 영성적 적용: 길을 준비하는 삶
요한은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80절). 그의 사명은 언제나 단순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실 분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성탄을 준비하면서 요한처럼 살아야 한다. 할례가 새 계약을 예표하듯, 우리는 세례로써 새로운 창조 안에 산다. “요한”의 이름이 은총을 드러내듯, 우리의 존재도 은총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즈카르야가 입을 열어 하느님을 찬미했듯, 우리의 입술은 감사와 찬미로 열려야 한다. 이웃이 경외심을 가졌듯,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어야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말한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오실 분을 위한 길을 닦는 삶이었다. 오늘의 신자들도 그와 같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Jesus of Nazareth, vol.1) 
 
요한의 탄생과 할례는 단순한 유다적 의례가 아니라 새 창조의 예고이며, 이름 속에 드러난 하느님 은총의 표징이다. 그의 탄생은 즈카르야의 찬미를 끌어내고, 백성 안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의 모범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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