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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25 조회수 : 35

12월25일 [성탄 대축일 낮 미사] 
 
복음: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어젯밤 미사의 전례가 하느님 아들의 탄생 신비를 맞이하는 흥분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오늘 낮 미사는 그 신비를 한층 더 깊이 묵상하게 한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탄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신비의 심연을 바라보게 된다. 
 
1.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요한복음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1,14)는 선언은 그저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표면적인 사실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요한이 사용한 헬라어 원문 eskēnōsen은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라는 뜻을 지닌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했던 ‘계약의 장막’(탈출 25,8; 민수 35,34)을 떠올리게 한다. 즉, 하느님께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머무르시는 분, 우리 가운데 거처를 이루신 분이 되셨다. 그분은 멀리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하느님, 인간의 기쁨과 고통, 시간과 공간 안으로 스스로 들어오신 하느님이시다. 
 
2. 창조주이신 말씀이 피조물 안에 머무르신다.
요한복음은 “그분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그분은 하느님이셨다”(1,1)라고 선포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다(1,3). 그러므로 강생의 신비란 창조주께서 당신의 피조물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 스스로 시간과 공간 안에 들어오시고, 무한하신 분이 유한함을 입으신 사건이다.
성 아타나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신성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De Incarnatione Verbi Dei, 54) 이것이 오늘 본기도가 말하는 놀라운 진리이다. 곧,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기에 인간은 하느님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영광의 역설: 낮아지심 속의 높아지심
요한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1,14) 그러나 이 ‘영광’은 세상의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낮아지심의 영광, 곧 십자가의 영광이다. 요한복음 전체는 이 역설을 중심으로 흐른다.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질 때, 나는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단순한 겸손의 모범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을 권위로 드러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연약함을 통해 당신의 전능을 보여주신다. 
 
4. 그분을 맞아들이는 자, 하느님의 자녀가 되다.
요한은 덧붙인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이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1,12) 이 자녀 됨은 혈통이나 인간의 욕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1,13).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을 외적인 사건으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루카 복음이 마리아에게 전한 말씀처럼, “성령께서 너에게 내리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감쌀 것이다.”(루카 1,35) 그 성령의 능력이 오늘 우리 안에도 역사하여,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5. 하느님의 사랑, 인간의 단순함 속에
히브리서(1,1-3)는 이 말씀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하느님의 아들이 “만물을 상속받으신 분이며, 만물을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분은 이 영광을 버리고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낮아지심을 통해 당신의 가장 참된 영광을 드러내셨다. 성탄은 바로 이 역설의 축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아기가 되시고, 무한하신 분이 우리 품에 안기신다. 
 
6. 성탄의 신비,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
성탄의 신비는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 속에 장막을 치고 머무르신다. 가난하고, 연약하며, 사랑을 기다리는 이웃 안에서, 또 우리의 단순한 기도와 선의의 행위 속에서, 그분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머무르신다. 그러므로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이며, 또한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축제이다. “여러분의 가정과 삶 속에, 오늘도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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